디지털 전환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군은 어디일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은 자체 역량으로 디지털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음식배달, 중고거래, 부동산 등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한 소상공인 지형도 지각변동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에서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끼는 건 중견기업이다. 사업 규모는 커졌지만 이에 상응하는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기가 녹록지 않고 디지털 전문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 중견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묘책은 없을까?
디지털 전환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 이후 산업 생태계 변화를 알 필요가 있다. 인터넷 혁명을 필두로 한 정보화 혁신은 단순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존,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기반 기업은 전통산업을 붕괴시켰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은 글로벌 산업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했다. 1990년대 정보 혁신은 글로벌 산업 개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한 번 디지털 전환이란 산업의 지각변동에 맞닥뜨리고 있다.
1990년대 정보통신 혁명과 현재 디지털 전환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경제와 플랫폼 경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1990년대 IT 혁신의 핵심이 인터넷 기술이었다면,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데이터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 데이터 기반 산업을 형성하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고 산업을 연결하는 링크 역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플랫폼 산업의 시작이다.
기존 산업은 기획·개발·생산·유통·고객관리 등 제품과 서비스 모든 부분을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했다. 협력업체와의 협업도 주관기업 내부 규정과 관리 감독을 통해 이뤄졌다. ‘파이프라인(pipeline)’ 방식이다. 수직계열화 형식의 협력업체 관리도 이 방식에 속한다.
그런데 플랫폼 산업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상호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이룬다. 특정 기업이 다른 기업에 종속되는 형식이 아니라 특정 과업이나 프로젝트별로 협업이 이뤄지는 형식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 환경에서 앱 개발자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농기계 생산업체 존디어도 2010년부터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기업에서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단순한 농기구 제조·판매 기업이 아니라 농업 테크놀로지 기업으로의 변신 전략을 추구해 온 것이다.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자사 제품 구매 고객이 생산 정보, 농기구 활용 정보를 공유하며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역·기후별 농작물 데이터 등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또 농업 관련 비즈니스를 원하는 제3의 업체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공개했다. 특화된 농업 관련 기후·날씨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하는 기업은 이 플랫폼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연결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존디어 협력사들도 이 플랫폼에 참여해 트랙터의 특정 부품을 직접 공급·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존디어의 플랫폼은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업에서 솔루션 산업으로 전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도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을 고민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자동차 업체 중에도 전통적인 개발·생산·유통·서비스의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업체가 있다. 전통적인 차량 생산에서 대량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만 담당하고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내부 인테리어 조립 부분은 개방형 플랫폼 형식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과 개방형 플랫폼은 새로운 산업 혁신의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 중견기업은 자체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존디어도 자체적인 폐쇄형 솔루션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자체 역량만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존 애프터서비스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존디어 사례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전통적인 하드웨어 생산 업체와 스타트업의 협업 그리고 제조·생산 비즈니스의 솔루션 기업 전환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