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은행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우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금리를 깎아주고 한도는 늘려주는 이른바 ‘ESG 대출’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금융사의 주요 업무인 대출에 ESG요소를 인센티브로 구체화한 게 특징이다. 석탄화력발전소와 같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중단 선언 등 자체적인 ESG 실천을 한 단계 넘어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 ESG 대출의 종류와 이를 다루는 금융사 수가 턱없이 적다는 지적도 많다.농협, 신한銀 ‘ESG 대출’ 출시29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친환경 기업에 운전·시설자금 대출 한도를 늘려주고, 금리를 깎아주는 ‘NH친환경기업우대론’을 지난 26일 선보였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평가한 환경성평가우수기업, 녹색인증 기업에 대해 최대 1.5%포인트의 대출 금리를 깍아준다는 계획이다. 지준섭 농협은행 농업·녹색금융부문장은 "ESG 선도은행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려는 취지의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이 ‘친환경 우대론’을 만든건 지난해 10월 선보인 ‘NH농식품성장론’의 성공 때문이다. 농식품 성장론은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발맞춰 내놓은 은행권 최초의 ‘ESG 대출’로 꼽혔다. 대출을 신청한 농업, 농식품 기업의 ESG요소를 지수화해 최대 0.6%포인트(기존 우대금리를 더하면 1.5%포인트까지)의 대출 금리를 감면해준다. 이 상품 판매액(신규대출액) 출시 4개월여만에 5000억원을 넘어섰다. 대출 건별 금액이 2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암하면 판매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라는 게 농협은행의 설명이다.
신한은행도 은행 첫 ESG대출인 ‘ESG우수상생지원대출’을 지난 12일 출시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측정한 ESG경영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 0.2~0.3%포인트의 대출 금리를 감면해주는 게 특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상기업의 ESG 공시 수준과 친환경 실천 노력 등 비재무적 요소를 반영하는 대출”이라며 “ESG에 뛰어난 대기업 뿐 아니라 그 기업의 협력사도 우대하는 상품으로 출시 20여일 만에 잔액이 2200억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국내 금융사들은 아직 ‘미흡’ ESG 대출은 글로벌 금융사 사이에서 지속가능연계대출(SSL)로 불려왔다.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착한 기업에 착한 대출을 공급한다’는 콘셉트다.
그런데 신한은행과 농협은행이 관련 상품을 내놨지만 국내 금융사들의 ESG 대출 상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2금융권에선 페퍼저축은행의 친환경자동차론 및 부동산 대출이, 현대커머셜의 지속가능신용정보 반영 기업대출이 ESG대출로 평가된다.
아직 ESG대출이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는 정성적으로 평가되는 ESG를 정량적인 금융사 신용평가모형과 융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이 ESG대출을 위해 ‘그린성장지수’를 만들었고, 신한은행도 자체적인 ESG 측정 및 평가모형을 만들게 된 이유다.
앞으로 ESG대출이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ESG관련 위원회를 속속 만들고 있고, ESG 금융상품을 내놓기 위한 준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ESG 요소를 평가한 기업대출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1000억원 규모의 ESG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주선하기도 했다. 우리은행도 관련 상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한 고위은행 임원은 “아직 글로벌 회계법인과 컨설팅 회사 등에서 ESG 요소를 정량화하는 툴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전면 도입하긴 어려운 점이 많다”며 “ESG 실천에 뒤쳐지면 기업가치 및 신용도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관련 여신 상품도 앞으로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