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본인의 강남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 28일 오후 의혹 제기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빠르게 경질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거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부동산 투기 의혹에도 상당 기간 해명할 기회를 줬고, 결국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김상조 정책실장에게는 자진 사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의혹 제기 하루 만에 경질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사실 김상조 정책실장의 행위는 불법도 아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실장은 전날 오후 해당 보도가 나온 뒤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한 데 이어 이날 오전 문 대통령에게 직접 사의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즉각 수용하고 후임에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을 임명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로 민심 이반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김 실장의 전셋값 인상 논란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전·월세 상한제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주도한 인물. 그런 김 실장이 '꼼수 전세 인상'을 한 것은 여론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본 셈이다.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임박한 점도 이례적인 전격 경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부동산과 관련한 엄중한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며 "김 실장 본인이 지적을 받는 사태에서 정책실장직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강력한 사임 의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상조 실장은 이날 퇴임 인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엄중한 시점에 크나큰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앞서 김 실장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임대차 3법의 시행 이틀 전인 지난해 7월29일 부부 공동명의로 소유한 서울 청담동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8억5000만원에서 9억7000만원으로 14.1% 올려 세입자와 계약을 갱신했다.
현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해온 김 실장은 이로써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후임으로 임명된 이호승 정책실장은 전남 광양 출생으로 광주 동신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32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경제정책국장 등을 거쳐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경제수석, 기재부 1차관 등의 요직을 지냈다.
유영민 비서실장은 "이호승 정책실장은 경제 등 정책 전반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과 균형감각이 있어 집권 후반기 경제활력을 회복하고 포용국가 등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