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희망봉’이 아니라 ‘폭풍곶’으로 불렸다. 워낙 비바람이 세고 거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아공 남서쪽 귀퉁이에 있는 희망봉은 대서양의 찬 해류와 인도양의 따뜻한 해류가 만나는 곳이다. 흔히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최남단은 아굴라스곶이다.
희망봉은 항해사들이 서유럽에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1만㎞나 항해한 뒤 최남단에 도착했다고 착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포르투갈 왕이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는 뜻에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바꾸었다고도 한다.
이곳은 148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1497년 바스쿠 다가마 등이 ‘발견’한 뒤 대항해 시대 유럽과 인도를 연결하는 뱃길의 핵심 기항지가 됐다. 이 지역을 차지한 포르투갈 때문에 스페인이 콜럼버스에게 신항로를 따로 찾으라는 임무를 주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기원전 6세기 고대 이집트의 네코 2세 때 페니키아인들이 홍해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이곳을 지났다는 기록이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에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적도를 넘어가니 태양이 북쪽(항해사들의 오른쪽)에 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남반구에선 한낮에 태양이 북쪽에 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희망봉을 돌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랫동안 항해사들의 이정표가 됐던 희망봉은 1869년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뒤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금은 호화 크루즈선과 작은 컨테이너 선박의 기항지, 관광지로 변했다.
이렇게 조용한 희망봉이 최근 수에즈 운하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좌초 사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운하 통행이 언제 될지 몰라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덴마크 선사 머스크는 이미 선박 15척의 항로를 희망봉으로 바꿨다. 2위 선사인 MSC도 11척, 우리나라의 HMM 역시 4척을 우회하기로 했다.
과거에도 수에즈 운하 폐쇄로 희망봉 우회 노선이 이용된 적이 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6일 전쟁’ 이후 1975년까지 8년 동안이었다. 그 후 46년 만에 다시 유일한 대체 항로인 희망봉 노선이 주목받고 있다.
희망봉을 경유하면 거리가 약 6000마일(약 9650㎞) 늘어나고 비용도 더 든다. 해적이라는 복병까지 있다. 아프리카 북동부 해역에서 오랜 기간 해적이 활동해왔고 서아프리카 해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운송로’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데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수출입 물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유럽의 자동차 제조·부품업체가 직격탄을 받게 됐다. 유럽에선 공장에 부속품 재고를 두지 않고 공정 따라 공급받는 ‘적시생산방식’(JIT)을 택하고 있어 여유분이 없다. 이집트를 중동·아프리카의 생산·판매기지로 삼은 아시아 가전업체도 발을 구르고 있다. 글로벌 운송 차질에 따른 원자재와 국제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고 있다.
해운사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다. 희망봉 우회 노선을 택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운하 좌초 사고가 해결되더라도 이미 발이 묶인 선박이 400척에 가까운 만큼 운항 재개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래저래 역사 속의 희망봉에서라도 작으나마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