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요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가 당초 예상과 달리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일부 기업에서 경영권 분쟁이 이어진 데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와 지난해 ‘동학개미운동’으로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주총에서 ‘주주 반란’이 속출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이사 선임 등을 놓고 맞섰던 기업과 주주 간 표 대결은 대부분 기업 측 승리로 끝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26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대한항공 지분을 8.05%(지난해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1.13%에 달해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무난하게 통과됐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찬성률은 82.84%였다.
‘조카의 난’으로 시장 안팎의 관심을 받은 금호석유화학의 주총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가 이사진 교체와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하면서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됐지만 박 상무의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경영권 분쟁 외에도 올해 주총에선 자산운용사와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이 잇따랐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및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올해부터 개정된 상법 때문에 감사위원을 1명 이상 분리 선임하고, 이때 대주주 의결권이 각각 3%로 제한돼 상장사들은 소액주주들의 표심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실제 주총에선 상당수 주주제안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스톤포레스트캐피털은 이날 한국공항 주총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냈지만 부결됐다. 지난 25일 열린 한진 주총에서도 사모펀드 HYK파트너스가 내세운 이사 최대 정원 증원, 전자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선임 안건 등의 주주제안이 모두 부결됐다. 이 밖에 중앙에너비스, 전진바이오팜, 금화피에스시 주총에서도 이사 선임과 자사주 소각 등을 다룬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이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가 투자자에게 반대표 행사를 권고한 상장사들의 주총에서도 주주 반란은 없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우리금융지주가 사외이사 5명을 재선임하는 안건에 전원 반대를 권고했다. 사외이사들이 라임 사태 등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6일 주총에서 사내·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국내 주식시장 특성상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다”면서도 “다만 개인투자자가 연대해 갈수록 적극적으로 주주 활동을 펼치고 있어 상장사들이 긴장을 늦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240곳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247곳, 코넥스시장 상장사 8곳이 주총을 열었다. 12월 결산 상장사 2360곳 중 21%가 동시에 주총을 연 ‘슈퍼 주총 데이’였다. 유가증권 상장사의 경우 전체(758곳)의 32%가 이날 주총을 열었다.
김은정/김진성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