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얀마는 우리보다 잘살았다. 그런데 1960년대 초 비슷한 시기에 쿠데타가 일어나 두 나라가 모두 군부 통치의 진흙탕에 빠졌다. 한 세기가 바뀌어도 나라 문을 닫고 사회주의 노선을 걸은 미얀마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데, 한국은 진흙탕에서 ‘한강의 기적’이란 꽃을 피웠다. 덕분에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이제 선진화에 도전하고 있다.
선진화를 위해선 산업 구조, 기업 경쟁력 그리고 정치 발전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한국의 산업 구조는 가히 환상적이다. 철강 같은 구산업과 반도체로 대표되는 신산업을 모두 가진 나라는 세계에서 여섯 곳 정도다. 우리 기업도 반도체, 정보통신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선두주자로 잘 달리고 있다. 문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정치다.
4·7 보궐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나라 곳간을 열어 유권자에게 나눠주는 데 혈안이 된 의적 홍길동 같은(?) 정치인들이 판친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미 뒷전으로 밀렸다. 유권자 표심잡기 정치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매표(買票)정치다. 과거에 현금봉투를 뿌렸다면, 지금은 국가재정을 무차별 살포해 표를 사려고 한다. 과거 지역공약사업으로 만든 충북 청주공항, 강원 양양공항이 텅텅 비었는데, 이번에는 부산의 표심을 구걸하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을 짓겠다고 난리다. 놀라운 것은 야당마저 부산 표심잡기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어디서든지 불러만 주면 달려가 얄팍한 선거마케팅을 하는 철새 정치인이 설치니 과거와 같은 선명 야당의 모습이 안 보인다.
과거에는 경제부처 예산실이 국고 열쇠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예산 따는 데 여당도, 야당도, 권력기관도 모두 을(乙)이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적폐청산으로 관료조직의 기를 꺾은 다음 대형 국고사업에 필요한 예비타당성조사까지 생략하며 나랏돈을 어처구니없이 낭비하고 있다. 여기에 한 수 더 두는 것이 무소불위의 거대 여당이다. 가덕도 특별법, 반기업적 경제입법에서 보듯이 기업의 하소연, 정부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구 밀어붙이고 있다.
청와대와 여의도엔 다가오는 선거만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은 2026년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간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터널에 들어간 일본에서 보듯이 노인 의료비, 연금 같은 사회보장성 재정 부담이 폭발적으로 급증할 것이다. 일본 정부 예산에서 이 같은 사회보장비 비중이 2000년 35%에서 2016년엔 무려 55%로 급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 300조원에 못 미치던 적자성 국가채무가 현 정부의 방만한 나랏돈 쓰기 탓에 2019년 408조원으로 늘어나고 올해는 무려 600조원이 넘을 것으로 분석했다. 2011년부터 흑자였던 국민건강보험도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2018년 이후 적자 행진을 계속해 불과 3~4년 뒤면 건강보험 적립금이 고갈된다고 한다.
이같이 무책임한 재정투입형 매표정치를 계속하다 초고령화 사회의 쓰나미가 몰아치면 한국은 확실히 재정파탄의 함정에 빠진다. 국가가 파산하는 것이다. 선진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지금 우리가 흥청망청 탕진한 재정적자의 부담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뒤집어쓴다.
부모 세대가 흘린 땀과 눈물로 우리 세대가 잘사는데, 다음 세대가 감당하기 힘든 국가부채를 물려줘선 절대 안 된다. 그러려면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선거에서 타락한 매표정치에 분노하고 민주선거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매표정치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무책임한 유권자가 맞장구를 쳐야 한다. 아무리 나랏돈 풀어 매표하고자 해도 유권자가 어리석게 표를 팔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정부가 현금을 살포하는 지원금, 무료 티켓을 받을 때 ‘누군가가 세금으로 낸 정부 돈’이라는 도덕적 부담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공짜를 지나치게 즐기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넘어간다는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지금 무책임한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어쩌면 창당 1년도 안 돼 의회와 엘리제궁을 휩쓴 프랑스의 마크롱 혁명 같은 민주선거혁명의 돌풍이 이 땅에도 몰아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