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휘두르지 않고 끌며 다가갔다면…특수협박 해당할까?

입력 2021-03-24 06:00
수정 2021-03-24 07:00


시비가 붙은 상대방에게 파이프를 휘두르지 않고 바닥에 끌면서 다가가기만 했더라도 특수협박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특수협박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특수협박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4월 경남 거창군에서 무면허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A씨 차량의 운전 형태를 보고 음주운전을 의심한 B씨(피해자)는 A씨의 자동차를 가로 막았다.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A씨는 “이 새끼들 장난치나”라고 말하며, 90㎝ 길이의 알루미늄 파이프를 바닥에 끌며 B씨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1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특수협박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파이프를 들어올리거나 휘두르지 않고 들고 다가가기만 한 점에 주목했다. 또 A씨가 파이프를 차에서 갖고 나와 다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초에 불과하는 등 짧은 시간 안에 소동이 끝난 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는 단순한 감정적인 욕설 내지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하다”며 “협박행위 내지 협박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파이프는 사람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 점, A씨의 행위를 보고 B씨가 차량을 후진한 점 등을 종합할 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