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불황?…지난해 가계 흑자 규모는 '사상 최대'

입력 2021-03-22 07:25
수정 2021-03-22 07:27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경기가 전반적으로 크게 침체됐던 것과 반대로 가계의 흑자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으로 가계의 소득이 가까스로 플러스로 나타났지만, 경기주체들이 위기 상황에서 지출을 급속히 줄이면서 나타난 이른바 '불황형 흑자'다.

21일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가구(2인 이상)의 흑자율은 △1분기 32.9% △2분기 32.3 △3분기 30.9% △4분기 30.4%로 모두 30%를 넘었다.

통상 가계동향은 전년 동기와 비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에 매 분기 사상 최고 흑자율을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3년 이후 작성된 가계동향 조사에서 가계가 30% 이상 흑자율을 기록한 건 단 5차례 뿐이어서다. 2016년 4분기 30.3% 한차례를 제외하면 모두 지난해에 발생했다.

흑자율은 가계가 벌어들인 돈에서 소비와 지출을 하고 남은 돈의 비율을 의미하고, 처분가능소득은 소득에서 조세와 연금,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금액을 뜻한다. 여기서 다시 일상적인 의식주 지출 등을 제하고 나면 흑자액이 된다.

따라서 흑자율은 처분가능소득에서 흑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데, 지난해 가계의 흑자가 늘었던 것은 소득이 더 늘었다기보다는 안 써서 혹은 못 써서 발생한 결과, 즉 불황형 흑자의 결과란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는 소득 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소비 지출 폭이 커지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소득이 줄어드는 데 따른 기계적인 지출 감소와 미래 소득의 불안정성을 대비한 예비적 저축 수요가 더해지면서 지출이 더 크게 위축되는 것이다.

최고 흑자율을 기록한 지난해 1분기의 경우 이같은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35만8000원으로 3.7% 늘었지만 가계지출은 394만5000원으로 4.9%나 줄었다. 가구당 평균 소득은 지난해 2분기에는 4.8%, 3분기에는 1.6%, 4분기에는 1.8% 증가했다. 가계지출은 2분기에 1.4% 늘어난 것을 제외하곤 3분기에 2.2%, 4분기에도 0.1%씩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과거 경제 위기에 비해 평균 가계의 소득이 늘어난 부분도 다르다. 정부가 지급한 보편·선별적 재난지원금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의 평균 소득은 어떻게든 늘었는데 지출이 크게 줄며 흑자율이 올라갔단 얘기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이같은 위기 때 비축된 흑자는 위기에서 탈출 후 폭발적인 소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보복소비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는 최근 '과거 경제위기와 코로나19 확산기의 소비지출 패턴 비교' 보고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가계에선 소득 감소보다 소비 감소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