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뢰 사건’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단단히 체면을 구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일탈 행정이 끝이 없다. 박 장관은 ‘검찰이 증인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한 대검의 ‘무혐의 처분’이 “지휘권 발동 취지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질책하고 나섰다. 별 증거도 없이 대법원 판결에 큰 하자가 있는 것처럼 몰고 가, 결과적으로 국가 행정력과 수사력을 낭비시킨 데 대한 반성은커녕 되레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박 장관이 내놓은 입장은 ‘무혐의 결론’을 수용한 것 외에는 일말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했다. 우선 “공정하고 합리적인 협의체에서 결론 내줄 것을 주문했다”며 ‘절차적 정의’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를 ‘대검 부장’에서 ‘일선 고검장’까지로 확대해 심층적 논의를 하겠다는 대검 건의를 자신이 이의 없이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재소자를 조사했던 검사가 회의에 출석하고, 비공개회의 결론이 언론에 유출된 점을 지적한 것도 민망하다. 담당 검사가 ‘기소’를 고집하는 회의 참석자들과 공방하는 것은 “치열하게 논의하라”는 지휘권 발동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어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도 작년부터 온라인 생중계하는데, 국민 관심이 집중된 회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점을 정색하고 나무라는 일 역시 궁색하다.
박 장관이 “실체적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검찰의 직접수사 관행이 부적절했다”고 강조한 대목이 특히 실망스럽다. 대법관들의 ‘13 대 0’ 만장일치 판결과 법무부 장관의 두 차례 지휘권 행사로 거듭 확인된 사실마저 거부하는 지독한 확증편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소자의 정보원 활용, 사건 관계인 가족과의 접촉 등 과잉 수사관행에 대한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을 실시하겠다고 한 대응은 과도하다. ‘한명숙 사건’만의 문제가 아닌데 왜 유독 이 건만 문제 삼느냐는 질문부터 답해야 할 것이다. 진짜 감찰이 필요한 대상은 증거도 없이 의혹을 확산하고 기소를 주장한 측이 아닌가.
박 장관은 얼마 전 “장관이기에 앞서 여당 의원”이라고 했다. ‘친정권 성향’ 검사들도 대부분 불기소에 동의해야 할 만큼 증거가 허술한데도 끊임없이 부풀리는 것은 ‘한명숙 두 번 죽이기’이자 ‘법치 죽이기’일 뿐이다. 혹여 ‘앞으로 모든 수사는 장관 눈치를 살펴서 하라’는 메시지는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