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 운용사 대표가 이런 얘기를 했다. “올초 상법개정안에 들어간 조항 하나가 기업들에 얼마나 약탈적인지 지켜보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 주총 시즌부터 난리가 났다. 이른바 ‘3%룰’. 감사위원 분리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3%룰이 뭐길래 이 난리일까.
A기업이 있다. 거래소에 상장된 알짜기업이다. 대주주는 미래사업 발굴을 위해 고심 중이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분율은 23%가량으로 낮다.
2대주주는 투자회사인 B사다. 몇 년간 꾸준히 사들여 지분 15%를 넘겼으나 주가가 부진해 재미는 보지 못했다. 이러던 차에 올해 초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B사에 날개를 달아줄 조항이 하나 생겼다. 3%룰이다.
B사는 펀드를 여러 개로 쪼개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개별 펀드 지분을 3%씩으로 나눠 3%룰의 적용을 회피하는 ‘이리떼 전략(wolf pack)’을 구사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표대결 시 A기업 대주주 의결권은 3%로 묶이고, B사는 최대 15%까지 행사가 가능하다.
결국 주총에서 B사가 내세운 감사위원이 선임됐다. 감사위원은 회사 내 경영 기밀사항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B사는 감사위원을 무기로 고배당, 보유자산 매각 등을 요구했다. A기업은 신사업이고 뭐고 꿈도 못 꾸게 됐다. 그동안 쌓아온 현금을 고스란히 주가부양을 위해 써야 할 판이다. 40년 넘게 키워온 기업이 껍데기만 남게 생겼다.
A기업 얘기 중 후반부는 아직 미실현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미 기관투자가로부터 실제 위협을 받고 있다. 창업주는 조만간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A기업뿐 아니라 주총 시즌을 맞아 상당수 기업들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3%룰은 소액주주 보호라는 ‘착한 명분’을 내세워 여당이 밀어붙였다. 결과는 어떨까. A기업처럼 멀쩡하게 사업하는 회사를 망가뜨려 놓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의 주가 부양으로 얼핏 주주들에게 좋아 보이지만, 결국 기업의 장기가치를 떨어뜨리고 주주가치를 갉아먹는다.
단지 좋은 건 기관투자가다. 기관들 사이에선 ‘3%룰 투자법’이 신종 투자법으로 등장할 정도다. 3%룰의 허점을 파고들면 힘들이지 않고도 회사의 자산을 빼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율이 취약하고, 쌓아둔 현금이 많고, 매각해야 할 자산이 많은 기업이 타깃이다. 기관 사이에선 이미 공격대상 기업 리스트가 작성돼 공유되고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밀어붙인 법안이 기업사냥꾼들에게 판을 깔아준 셈이다.
물론 악덕 기업주가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경우 3%룰은 효과적인 제어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투표제가 도입된 상장사라야 소액주주가 주총에서 목소리를 낼 텐데, 현실적으로 전자투표제를 회사 정관에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비중은 전체 상장사의 5%도 채 안 된다. 그림의 떡인 것이다.
주주행동주의는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자본시장에서 지난 40년간 주주행동주의가 번성한 결과 이득을 본 주체는 엉뚱하게도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기관투자가였다. 기관들은 기업의 자사주매입과 고배당을 밀어붙여 배를 불렸고, 그걸 도와준 CEO들은 반대급부로 천문학적인 스톡옵션을 챙겼다. 그런 사이 소액주주들은 빈털터리가 됐고, 미국의 성장 투자 고용 분배는 갈수록 악화됐다.
3%룰은 기업 현실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만든 전형적인 작품이다. 의도가 착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정책일 수는 없다. 현실을 모른 채 만든 정책은 아무리 출발이 순수해도 결과적으로 시장을 파괴하는 매우 사악한 정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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