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가 공장 화재로 3개월 이상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2~3위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언도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인한 자동차 감산 규모가 150만 대에 이를 전망이다.
르네사스는 화재로 가동이 중단된 사이타마현 나카공장의 생산을 재개하는 데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이라고 22일 발표했다. 또 제조에 2~3개월이 소요되는 반도체 공정 특성상 공급을 정상화하기까지 3개월 넘게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시바타 히데토시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생산 중단이 반도체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나카공장은 르네사스가 일본에서 운영하는 9개 공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르네사스 전체 반도체의 40%를 여기서 생산한다. 이 중 60%가 차량용 반도체로, 도요타와 닛산자동차에 납품하는 물량이다. 이 공장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3개월간 조업을 중단해 일본 자동차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 19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인한 피해는 차량용 고성능 반도체인 12인치(300㎜) 웨이퍼(반도체 원료) 생산라인에 집중됐다. 르네사스는 “제조 중인 제품을 포함해 재고가 약 1개월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19 영향으로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중순 미국 남부지역에 한파가 몰려와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서 NXP와 인피니언의 텍사스주공장 가동도 중단된 상태다. NXP는 이달 초 텍사스주공장이 1개월가량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인피니언은 오는 6월에야 공급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업체 ‘빅3’가 모두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자동차업계의 감산도 확대되고 있다. 도요타와 닛산, 포드는 18~19일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닛산자동차는 미국 테네시주와 미시시피주에 있는 생산라인 일부를 멈춰세웠다. 멕시코에 있는 공장도 가동을 중지했다. 독일 폭스바겐은 오는 28일까지 포르투갈의 공장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혼다는 “르네사스 공장의 가동 중단이 1개월 이상 이어지면 반도체 재고가 바닥나 4월 이후부터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는 생산 차종을 바꾸는 한편 다른 반도체 업체의 제품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쓰미시UFJ모건스탠리증권은 올 상반기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른 세계 자동차업계의 감산 규모가 150만 대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르네사스 화재로 생산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도쿄증시에서 도요타 주가는 3.3% 하락했다. 혼다와 닛산자동차 주가도 각각 3.6%, 3.7% 떨어졌다.
존 뉴퍼 미국 반도체협회(SIA) 회장은 20일 중국 국무원 개발연구재단 주최로 열린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앞으로 반도체업계의 디커플링(결별)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뉴퍼 회장은 “반도체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완벽하게 구축한 나라는 없다”며 “균형적이고 다양한 글로벌 공급망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도쿄=정영효/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