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이규운 "전통·현대 아울러 이해하기 쉬운 춤 만들었죠"

입력 2021-03-19 15:27
수정 2021-03-19 15:29

"난해하거나 세련됐다고 무조건 훌륭한 춤은 아닙니다. 관객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면서도 한국적인 색채를 보여주는 게 저의 의무죠."

18일 정동극장에서 만난 안무가 이규운(사진)은 무용에 대한 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춤이 '현대 무용'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릴 때는 안무가의 주관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어요. 누구도 공감하지 못한 춤을 춰도 예술인 줄 착각했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규운이 정동극장에서 일한지는 올해로 11년째. 2010년 정동극장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2014년부터 지도위원을 맡았다. 이달에는 정동극장이 처음으로 출범시키는 예술단 정기공연의 안무를 짰다. 오는 23일 막을 올리는 무용극 '시나위 몽'이다.

다섯 장으로 이뤄진 공연의 주제는 관객들을 위로하는 것. 전통 장단인 시나위를 활용해 파편화된 현대인들을 이어주고 치유하는 춤을 선보인다. 연출가 이재환이 대본을 쓰고 무대 연출을 맡았다. 정동극장 예술단을 비롯해 경기민요 소리꾼 김주현이 무대에 오른다.

그가 주제를 풀어내려 시나위를 선택한 이유는 '즉흥성'이다. 시나위 장단은 정형화되지 않는 기악곡이다. 서로 맞지 않은 장단으로 시작돼 종결부에서 화합하는 게 특징이다. 이 안무가는 코로나19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기 위한 춤이라고 설명했다. "재즈와 가까워요. 듣다 보면 즉흥성이 드러납니다. 매일 똑같은 삶에 찌든 우리는 안녕한지, 위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 찾은 장단이었습니다."

정동극장 예술단의 첫 정기공연인 만큼 안무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섯 장으로 이뤄진 극에서 그가 손꼽는 춤은 4장 '머물던 숨이 차오르고, 목은 메고'다.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조화를 이루는 장이다. "소외된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하는 장입니다. 안고 보듬으면서 흐름이 절정으로 치닫죠. 희망은 없어보여도 행복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일깨워주죠."

공연 흐름도 바꿨다. 통상 결말에 접어들어 갈등이 해소되고 절정에 이르는 '기승전결'을 탈피한 것. 4장을 클라이막스로 두고 5장은 정적인 무용을 선보인다. 관객들이 여운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마무리가 화려하면 주제의식이 청중들 머리에서 휘발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공연을 곱씹어 보고 공연장을 떠나도 감상이 오래가도록 무대를 꾸렸죠."

준비 과정도 독특했다. 안무가 개인 의견대신 무용수들이 펼치는 동작을 적극 활용했다. 소재를 들은 단원들이 즉흥춤을 선보이면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이를 다듬어서 정형화된 춤으로 바꿨다. 이 안무가는 "전에는 안무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무용수들에게 반영했는데 이번에는 과정을 뒤바꾼 것"이라며 "단원들이 느꼈던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게 청중들의 이해도를 높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