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공직자 품격손상 글은 징계해야…오죽하면 총리가 나섰겠나
LH 직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LH뿐 아니라 공기업과 공공기관 전체가 많은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막말로 욕먹고 비난 듣는 것으로 보자면, 감독 부처인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공직 전체가 심판대에 오른 것 같은 상황이다.
안 그래도 직전 L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언론에 해명하면서 적지 않은 물의를 빚었다. 본인이 사장으로 있던 시기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기는커녕 해명 수준도 못 되는 변명을 하면서 혹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비록 인터넷의 블라인드 게시판이라고는 하지만 ‘(LH)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으로 국민적 공분을 자극할 만한 글을 올리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조사든 수사든 밝혀내고 처벌 조항을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내용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진다” “LH 직원이라고 투자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아니꼬우면 이직하라”는 등 극히 비상식적인 조롱 성격의 글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여론의 분노를 보라. 다수 국민의 공분은 기본적으로 ‘정의’와 ‘공정’ 등 현 정부가 내세운 가치가 밑바탕부터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비단 LH 직원 몇 명의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맞다. 아무리 책임 없는 인터넷 게시판이라고 하지만 정도의 문제라는 게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례 언론브리핑에 나서 직접 기자들에게 조사 방침을 설명한 것도 국민적 공분을 산 사례에 대해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정 총리는 블라인드 글과 관련해 “공직자들의 품격을 손상시키고 국민에게 불편함을 더하는 이런 행태는 결코 용서받아서 안 된다”며 가능한 방법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계정이 도용됐다거나 거짓 신분의 글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공직자라면 어떤 형태로든 징계를 받아야 한다. [반대] 작성자 찾아내기 사실상 어려워…여론 의식해 '으름장' 놓은 과잉행정국무총리가 나서서 블라인드 글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행위다. LH라는 공기업에서 비롯된 국민 공분형 일탈이 현직 공무원과 여당의 현직 국회의원으로까지 의혹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또 하나의 인기영합 발언을 한 것이다. 전형적인 으름장 놓기이자 뭔가 대응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과잉 행동, 쇼 행정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앱의 글은 누가 썼는지 밝혀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상황이다. 블라인드 운영자 쪽에 따르면 블라인드 앱 계정만으로 이용자를 특정할 수 없다. 이메일 소유자의 기록 열람 등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행정권을 동원해 관련 정보를 요청해도 제공할 데이터 자체가 없다.
설령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올라온 글이 명예훼손 등 범법 혐의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평가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글’이라는 판단만으로 자유 민주 국가에서 특정인을 어떻게 처벌하느냐는 지적도 타당하다. 글쓴이의 신원을 밝히는 것부터가 어렵고, LH 직원의 글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LH 직원이 올린 것이라고 해도 총리가 윽박지르듯 한 그런 ‘엄벌’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글 게시자를 찾아내고 신원을 확인해 처벌 규정을 최대한 적용한다고 해봤자 공기업 직원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 정도일 뿐이다. 총리가 나선 게시자 색출은 정부의 과잉행정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표현 자유를 쉽게 침해하는 처사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LH도 “블라인드 운영 구조상 현직 외에 파면·해임·퇴직자의 계정이 유지될 수 있다”며 “해당 글을 포함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글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LH가 사과·자숙과 함께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전·현직 직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했으니 이런 부분은 회사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 생각하기 - 진상 규명·실태파악이 우선…경쟁적으로 '처벌법'부터 추진하는 것은 곤란
미발표 내부 정보를 이용한 LH 직원의 ‘반칙 투자’에 국민적 공분이 큰 것은 사실이다. 공공택지를 발굴 개발하고, 매입 보상 등 실무를 총괄하는 공기업이 내 몫 챙기기에 나섰으니 여론이 들고 일어선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과잉 흥분은 금물이다. 정부와 여당이 과잉처벌법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도 일의 선후 완급이라는 차원에서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철저한 진상 규명 없이는 이 또한 어물쩍 덮고 가려는 봉합책과 다르지 않다. 일이 발생하면 요란하다가도 바로 잊거나 외면해버리는 냄비근성이 행정에도, 입법에도 그대로 계속되어선 곤란하다. 그동안 법이 없어서, 처벌이 약해서 미발표 정보 악용 불법 투기가 생겼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회의원들과 그 보좌진 등이 자발적으로 “우리 먼저 정밀 전수조사하라”고 나와야 정상이다. 처벌 규정 강화는 그 다음이다. 진상 규명과 실태 파악을 한 뒤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일을 계기로 또 국민의 자유와 사적자치 영역을 마구 침해하는 행위는 곤란하다. 블라인드 앱 글 작성자까지 수사기관을 동원해 파헤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행여 중학생 정도가 썼을지도 모를 글이면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도 있다.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보는 게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