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호소인 3인방' 사퇴효과 반감…극렬지지층은 2차가해 [종합]

입력 2021-03-19 10:14
수정 2021-03-19 10:16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재차 사과하고, 이른바 '피해호소인 3인방'이 모두 캠프 직책을 내려놨다.

캠프 대변인인 고민정 의원과 공동선대본부장인 진선미, 남인순 의원은 지난 18일 밤 피해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들은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주도한 이들이다.

박영선 후보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취재진과 만나 이들의 캠프 퇴출에 대해 어렵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이번 보궐선거가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여파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 때문에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A씨는 앞선 1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A씨는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며 "저의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상처준 정당(더불어민주당)에서 시장 선출됐을 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고 기자회견을 자처한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과 박영선 후보는 잇따라 사죄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친문(친문재인) 성향 극렬 지지층은 더욱 강도 높게 A씨를 몰아세웠다. 피해자가 '선거 개입'을 시도한 것이라며 2차 가해성 발언을 쏟아냈다.

한 누리꾼은 "이 여자는 왜 자꾸 지X인지 모르겠다. 박 시장 죽인 것도 모자라서 역사 흐름까지 바꾸고 싶은 거냐. 뒤에서 조종하는 노란 머리 XX(김재련 변호사)도 지옥 가서 천벌 받기를 소원한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주어는 없다"면서도 "정치적 XX"라고 피해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외에도 여권 지지자들은 "누가 봐도 정치적 목적", "국짐당(국민의힘)의 꼭두각시" 등 비판을 쏟아냈다. 한 여권 지지자는 친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박원순 시장님 피해 주장자를 서울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일부 여권 지지자들은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피해자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 SNS 계정에도 몰려가 "잘 모르는 문제는 입 닫고 있어라" "증거도 없는데 뭘 알고 사과를 하느냐" 등의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청을 출입한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4월 사건 피해자님, 저를 고소하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논란이 됐다. 그는 최근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반박하는 취지의 '비극의 탄생'이란 책을 펴냈다.

손 기자는 "(피해자가) 2차 가해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냈는데 '피해자=거짓말쟁이'로 보는 논거들 상당수가 내 책에서 나오고 있다"며 "논박할 자신이 있으면 책에 대한 출판금지, 판매금지가처분을 걸어 법의 심판을 의뢰하라. 4년 모신 시장을 고소한 마당에 듣보잡 기자 고소가 어렵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들의 2차 가해성 발언을 독려하는 듯한 메시지도 나왔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 A씨가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해 "메시지의 핵심은 민주당 찍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지난 18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그동안의 본인 이야기와 어제 행위(기자회견)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되는 것"이라며 "(A씨의 기자회견은) 선거 기간의 적극적인 정치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본인이 그러고 싶으면 그럴 자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부터는 별개의 정치 행위에 대한 비판은 다른 차원이 된다"며 "그걸 비판한다고 2차 가해라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A씨를 겨냥해 "굳이 나서는 이유는 모르겠다"고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일부 측근들과 지지자들이 여전히 성추행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직권조사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 내용이 18일 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인권위는 지난 1월 "피해자에 대한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이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성 관련 사건의 결정문 전문(全文)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 지침에 따라 포괄적인 조사 결과만 발표했고 최근 피해자 측에 결정문 전문을 보냈다.

추가로 공개된 59쪽짜리 인권위 직권조사 결정문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2016년 하반기부터 작년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피해자에게 "좋은 냄새 난다, 킁킁" "혼자 있어? 내가 갈까?" 등의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냈다.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런닝셔츠만 입은 상반신 사진과 여성의 가슴이 부각된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낸 사실도 있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집무실에서 피해자의 네일아트를 한 손톱과 손을 만진 사실도 인정했다.

또 인권위가 확인한 피해자의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기록(지난해 5월)에는 '야한 문자·몸매 사진을 보내 달라는 요구를 받음' '집에 혼자 있어? 나 별거 중이야라는 메시지를 받음' 등의 내용이 있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