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빛, 즐거움, 음식…모두 벌이 준 선물

입력 2021-03-18 17:25
수정 2021-03-19 02:42
사람들은 대부분 곤충을 징그럽다고 여긴다. 곤충학자조차 그렇다. 제프리 록우드 미국 와이오밍대 곤충학 교수는 “연구 중인 메뚜기의 모습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살충제를 제외한 각종 제품 광고에서 곤충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벌은 예외다. 맥주와 시리얼 등 음식 광고에도 자주 등장한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소어 핸슨은 《벌의 사생활》에서 “인류가 오랫동안 벌에게서 꿀과 밀랍 등 유용한 자원을 얻으며 벌과 친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은 유인원 시절부터 벌꿀을 채집해왔고, 8000~9000년 전에는 양봉을 시작했다. 벌꿀은 훌륭한 식품이자 기호품이었다. 벌집에서 나온 밀랍은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밤을 밝혔다. 저자는 최신 연구 결과를 인용해 벌꿀 섭취가 인간 뇌의 진화에도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꽃의 아름다움과 입맛을 돋우는 음식 등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의 상당수도 벌에게서 왔다. 벌이 꽃가루받이를 돕기 시작하면서 꽃들은 벌을 유혹하기 위해 다양한 색과 향기를 뿜어내게 됐다. 다양한 과일과 채소 품종도 벌 덕분에 생겨났다. 저자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분해해 빵과 고기를 제외한 양상추, 치즈, 소스, 양파 등 대부분의 재료가 벌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컨대 젖소는 콩과 식물인 알팔파를 하루 6㎏ 이상 먹어치우는데, 알팔파는 전적으로 벌을 통해 번식한다.

저자는 벌이 꽃가루를 먹는 ‘채식주의자’가 된 배경부터 최근 벌 개체수 감소로 농가가 겪는 어려움까지 재미있게 풀어 나간다. 벌이 멸종하지 않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지만, 뻔한 환경지상주의로 빠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최근 벌들이 줄고 있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지만 멸종을 논하는 건 이르다. 다만 필요한 것은 인간이 예전처럼 벌에게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