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영웅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특히 《삼국지》는 여러 번 읽었는데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영웅호걸들의 활약상과 극적 장면에 빠져들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나라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영웅들에 대한 기억은 오랜 공직 생활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구절은 오나라 여몽의 이야기다.
어느 날 오나라 군주 손권은 용맹한 부하 장수 여몽을 불러 말했다. “이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마땅히 공부에 힘을 쓰시오.” 어릴 적 가난한 탓에 공부를 하지 못했던 여몽은 손권의 말에 반박했다. “장군으로서 할 일이 많아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자 손권은 조용히 타일렀다. “바빠야 나보다 바쁘겠소. 나도 경전, 사서, 병서 모두 읽고, 후한 광무제도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거늘(手不釋卷)….”
여몽은 손권의 훈계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공부를 시작했고, 지식이 크게 성장했다. 나중에 오나라에서 학식이 높은 노숙은 달라진 여몽의 지식에 놀라 “내가 알던 여몽이 아니구려!” 하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다.
늦은 나이에 학문을 이룬 여몽도 훌륭하지만, 손권도 대단한 걸물이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그 얼마나 골치 아픈 과업들이 많았을까? 게다가 손권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다른 나라와 대치했던 난세의 군주가 아닌가. 그런데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학문 정진에 솔선수범한 데다, 부하 장수마저 학식 높은 선비로 길러냈다. 결국 오나라는 여몽의 지략으로 명장 관우를 물리치고 형주 남군을 쟁취한다. 나는 항상 이 고사를 잊지 않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후배들에게도 꾸준히 공부를 권유했음은 물론이다.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부임한 후 지속적인 성장을 원하는 직원들과 함께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에 도전했다. 금융회사를 평가하는 업무 특성상 금융, 재무, 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지만, 직원들이 목표 의식을 좀 더 가질 수 있도록 자격증 시험 응시를 권하고 최고경영자(CEO)인 나도 솔선수범해 응시했다. 시험과목이 방대해 처음엔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직원들과 서로 응원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한 결과 참여자 대부분이 합격하는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이룬 성과도 기뻤지만, 같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기계발에 의욕을 보인 젊은 직원들의 열정과 저력은 무척 인상 깊었다. 예금보험공사의 역할인 금융 안정과 예금자 보호를 수행할 귀중한 인적 자원들이라고 느꼈다. 나는 우리 때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기대를 건다. 자기 본업에도 충실하면서, 항상 수불석권하는 청년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