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미래포럼, 집단지성으로 대한민국 AI생태계 만드는 출발점"

입력 2021-03-17 17:30
수정 2021-03-18 01:25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싶어도 국내 컴퓨팅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 연구자들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17일 만난 윤성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사진)은 AI미래포럼 발족을 두고 “집단지성으로 대한민국 AI 생태계를 조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반기면서도 걱정까지 함께 내비쳤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AI 관련 인프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윤 위원장은 “AI 글로벌 경쟁력은 무지막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인프라에 달려 있다”며 “지금 국내 대학과 연구소는 전장에 소총 하나 없이 나가는 군인 꼴”이라고 말했다. 4차산업위는 올 들어 국무총리 공동위원장 체제로 격상되며 각 부처 AI 데이터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를 맡게 됐다. 윤 위원장은 “데이터 독점과 소수 글로벌 기업의 시장 장악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더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개방과 협력, 양자컴퓨터 개발 등을 통해 ‘AI 수월성’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컴퓨팅 인프라 문제가 어느 정도인가.

“AI 연산량이 워낙 많다. 공간 확보도 해야 하고 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도 충분히 놔야 한다. GPU 개수가 AI 경쟁력을 좌우한다. 클라우드를 쓰면 되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학계나 연구소엔 여력이 없다. 미국 오픈AI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5년간 약 42일마다 슈퍼컴퓨팅 수요가 두 배씩 증가해 2025년엔 1600억페타플롭스(PF)에 이를 전망이다. 2020년 기준 수요(368만PF)의 4만3478배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는 이런 변화에 무방비 상태다. GPT-3 같은 ‘초거대 AI’는 개발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학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서울대만 해도 국제적 수준엔 턱없이 못 미친다. AI 전공 교수가 부임해도 GPU를 놓을 공간이 없다. 대학 내 전력공급 파워플랜트 세 곳도 위험수위 포화상태다. 다른 대학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정말로 큰일났다. 반면 미국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의 연구진은 교수 1명이 GPU 수만 대를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이런 인프라 차이는 AI 시대 총체적인 국가경쟁력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다행히 올해부터 광주광역시에 AI데이터센터 건립이 본격화됐다. 이런 인프라가 곳곳에 많아져야 한다.”

▷‘AI허브’ 조성 사업은 진전되고 있나.

“물리적인 허브가 아니다.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로 기술을 묶는 가상의 허브가 될 것이다. 해당 허브에 GPU 서버를 대규모로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다. AI허브는 선이 굵은 과제를 주로 수행할 예정이다. 중국발 미세먼지 저감 기술 개발, 코로나19 등 감염병 백신 개발 등이다. 슈퍼컴퓨팅, AI 반도체, 알고리즘 연구, 클라우드 등 요소 기술별로 전담기관을 지정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예를 들면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이나 AMD가 최고여서 우리가 접근하기 힘들지만, AI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조만간 AI허브의 밑그림이 나올 것이다.”

▷글로벌 AI 기술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AI, ‘메타AI’다. 강(强)인공지능(AGI)이라고도 한다. AI를 개발하기 위해선 엔지니어들이 엄청난 시간을 들여 일일이 알고리즘을 짜고 돌려보고 오류를 보정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를 자동화하는 AI가 강인공지능이다. 구글 오토ML비전이 대표적이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리고 엔터만 치면 자동으로 AI 연산 결과를 산출해주는 꿈 같은 기술이다.”

▷양자컴퓨터가 강인공지능 개발을 촉진하나.

“그렇다. 지금 존재하는 디지털컴퓨터는 이른바 ‘폰-노이만 머신’이다. 메모리에 정보를 담고 이걸 CPU가 끌고 와 연산한 뒤 결과값을 내놓는다. 딥러닝이 추구하는 병렬 처리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기본적으로 현재 컴퓨터에는 AI가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양자컴퓨터는 폰-노이만 머신이 아니어서 내재적으로 병렬 처리가 가능하다. 슈퍼컴퓨터의 AI 연산을 앞지를 수 있다. ‘조합 최적화’에 특화된 양자컴퓨터와 AI 머신러닝은 찰떡궁합이다. 머신러닝에서 가장 목마른 연산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구글, MS, IBM, 인텔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데이터 컨트롤타워로 승격한 4차산업위의 역할은.

“데이터 총괄 부처가 다음 정부에선 반드시 신설돼야 한다. 지금 정부조직법을 고치기는 적절치 않아 브리지(가교) 역할을 맡게 됐다.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의 데이터 관련 정책이 상충할 때 조율한다.”

▷‘전파 기반 혁신성장 전략’도 AI와 관련돼 있나.

“전파는 공학적으로 굉장히 높은 가치를 지닌다. 자율주행차, 드론 등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AI 신기술은 결국 전파로 작동한다.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그런데 굉장히 어렵다. 기술적 중요성을 감안해 1990년대 대학에 관련 학과들이 생겼지만, 대부분 없어지거나 통폐합됐다. 전파 연구개발(R&D)이 고도화되면 전력을 도서지역 등에 무선으로 전송하는 게 가능해진다. 인체 내 장기 이상을 측정할 수도 있다. 이런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센싱, 에너지 전송, 전파 의료 세 가지 분야에서 대표 기업 20곳을 발굴해 육성할 방침이다.”

▷‘클라우드 플래그십’도 추진한다는데.

“네이버 KT 등 국내 대표 클라우드 기업을 중심으로 중소·중견기업이 협력해 산업 분야별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3년간 매년 5개 분야를 선정해 분야별로 최대 100억원을 지원한다. 구글과 아마존, MS 등 초거대 사업자에 맞서봤자 이미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산업계 니즈가 너무 많다. 아마존도 원래 온라인 서점을 하다가 물류센터를 확장하면서 클라우드 인프라를 나란히 넓혔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이나 다른 국내 기업들이 못할 이유가 없다.”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분야는.

“인간을 ‘데이터사피엔스’로 불러야 할 정도로 데이터 기반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고 있다. 4차산업위가 초석을 다진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민간이 활용할 만한 데이터는 여전히 부족하다. 관련 법령 간 모호한 기준 때문에 시장도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데이터 119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등 민간 수요가 높은 미개방 핵심 데이터 제공 등 11개 실천 과제와 마이데이터 기반 실손보험 자동 청구 등 9개 서비스 확대를 담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듣겠다. 데이터 기반 AI 경제는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추진해야 할 국가적 목표다.”

■ 윤성로 위원장 약력

1996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졸업
2006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 박사
2006~2007년 인텔 선임연구원
2007~2012년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2012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2019년~ 서울대 AI연구원 기획부장, 공과대학 부학장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