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의 미학경영] '원본 아우라'의 힘

입력 2021-03-17 17:52
수정 2021-03-18 00:12
2020년 10월, 애플은 첫 5세대(5G) 통신 모델 출시 2주 만에 세계 5G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 아이폰의 두 모델이 각각 16%, 8%의 시장을 점유해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 3~4%대 시장점유율로 그 뒤를 이은 모델들을 크게 앞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이토록 선전하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원본의 ‘아우라’가 갖는 특수한 힘이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종교적 차원에서 논의됐던 아우라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벤야민은 ‘신성한 빛’, ‘영기’ 등을 의미했던 아우라를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과 ‘진품성’으로 재정의했으며, 이를 복제품으로는 모방할 수 없는 원본의 속성으로 설명했다. 그는 기계 생산시스템에 의해 예술 복제품들이 만들어지면서 ‘예술의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원본의 아우라만은 복제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이는 인터넷으로 간단히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음에도 매년 수백만 명의 인파가 루브르박물관으로 향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이 물리적인 원본과 무관하게 ‘개념’의 가치가 논의되는 오늘날에는, 아우라 역시 개념 형태로 현존한다. 스마트폰의 '원본' 된 아이폰
2019년 포장 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인 작품 ‘코미디언’(사진)이 1억5000여만원에 거래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흰 벽에 회색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가 고가의 예술작품이 된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는데, 이를 한 행위 예술가가 먹어버림으로써 또 한 번의 소동이 일어났다. 이 소동은 간단히 해결됐는데, 예술가 측은 다른 바나나를 다시 붙여놓으며 “바나나는 발상일 뿐”이며 작품이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답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아우라는 물리적인 원본이 아니라 발상과 개념에 자리하게 됐다.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성을 넘어 심미성과 정체성, 현존성을 구매하는 예술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원본의 아우라는 오늘날 기업과 브랜드가 좇는 가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애플 아이폰이 갖는 매력과 가치가 무엇이기에 더 좋은 기술 요소와 가벼운 무게로도 쉬이 경쟁할 수 없을까? 애플이 스마트폰이라는 제품 개념 자체의 온전한 아우라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각인시켰다.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됐고, 세계 휴대폰 시장은 전복됐다. 등장과 동시에 기능성과 심미성, 정체성과 현존성까지 갖춘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원본’이 된 것이다.

한편, 의자라는 인공물의 개념은 원본의 위치가 정립되지 않았다. 제품의 기능성은 만인의 공유물이다. 그렇기에 제품의 심미성과 정체성, 현존성 등을 고유화함으로써 아르네 야콥센의 ‘달걀 의자’, 핀율의 ‘치프테인 체어’ 등 새로운 원본의 창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전에 없던 아우라 만든 한국 가전그러나 그 개념 자체가 특정한 원본의 그늘 아래 있을 때, 경쟁은 고될 수밖에 없다. 모방은 쉽다. 벽과 테이프만 있다면 어떤 물체라도 벽에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결국 원본, ‘벽에 붙인 바나나’를 떠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더 예쁜 테이프를 사용하고, 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벽에 붙이더라도 원본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과 제품이 개선돼도, 그 발전과 변형이 경쟁자가 보유한 원본의 발전으로 회귀된다면 그 얼마나 어렵고 고된 싸움이겠는가.

그렇다면 최초가 아닌 제품과 서비스는 패할 수밖에 없나? 그렇지 않다. 아이폰은 등장과 동시에 예술사회의 소비자들이 갈망하는 요소를 빠짐없이 제공해 감동을 이끌어낸 이례적인 사례다. 생활 속의 무수한 제품과 서비스는 ‘아트 터치’가 더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비자 감동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고 심미성, 현존성, 정체성을 극대화하는 제품으로 새로운 원본을 창조한다면 시장을 석권하고 소비자를 열성팬으로 만들 수 있다.

지난 200년을 인류와 함께한 세탁기 시장을 보자. 오늘날 LG, 삼성이 유럽과 북미의 세탁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초창기엔 투박한 저가 제품으로 고된 경쟁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투박한 기계장비 같던 가전도 인테리어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개념과 그를 뒷받침하는 디자인, 무엇보다도 세탁기와 함께 즐거워하는 가족의 현존성이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아우라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세탁기 원본이 탄생한 것이다. 21세기 미학경영의 시대, 아우라에 대한 안목이 최고경영자(CEO)의 새로운 조건이다.

김효근 <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겸 작곡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