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미술품' NFT 거래, 데이미언 허스트도 뛰어들었다

입력 2021-03-16 17:37
수정 2021-03-17 00:23

이번엔 데이미언 허스트(56·사진)다. 블록체인 기반의 대체불가능토큰(NFT: non fungible token) 기술이 예술계에 빠르게 침투 중인 가운데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허스트도 이 물결에 동참했다. 자신의 작품 1만 점을 NFT 등 무형으로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에 앞서 허스트는 벚꽃을 그린 판화 8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도입했다. 작품 1만여 점, NFT로 세상에 공개 허스트는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5년 동안 비밀리에 ‘Currency(유동성)’라는 프로젝트를 헤니(HENI)그룹과 함께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자신의 창고에 보관 중인 1만 점의 원본 작품을 NFT 등의 암호로 변환해 세상에 내놓는 프로젝트다. 허스트는 “이 작품들은 지금은 창고에 잠들어 있지만 블록체인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런던 소호에 본사를 둔 헤니그룹은 저명한 예술가들과 함께 출판, 인쇄, 디지털, 영화, 연구 등의 사업을 펼치는 예술 서비스 기업이다.

허스트에 따르면 ‘커런시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올해 말 판매를 시작하면서 실체를 드러낼 예정이다. 그는 “전체 프로젝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직접 그리는 작업만이 아니라 작품을 NFT로 변환하고 그것을 구매하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해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것. 그는 “지금까지 내가 작업해온 것 중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허스트까지 동참한 NFT의 열기는 예술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NFT는 복제할 수 없는, 한정적인 디지털 아이템을 뜻한다. 디지털 작품(콘텐츠)은 실물을 만질 수도, 집에 걸어둘 수도 없다. 무한대로 쉽게 복제할 수 있어 고유함이나 진위를 가리기도 어렵다. 디지털 파일로 제작된 예술품이 실물보다 훨씬 낮게 평가되는 이유다.

하지만 NFT 기술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NFT는 디지털 작품에 고유한 주소를 만들어 진품임을 보증한다. 이 덕분에 디지털 파일도 최초, 유일의 가치를 입증받을 수 있게 됐다. 트위터 창업자인 잭 도시가 최근 경매에 내놓은 자신의 첫 트윗이 대표적이다. 그가 2006년 처음으로 올린 트윗은 온라인에서 무한으로 복제 가능하다. 하지만 이 트윗의 NFT가 있으면 도시의 최초 트윗임을 입증할 수 있다. 오는 21일 경매가 마감되는 이 트윗의 16일 현재 최고 입찰가는 250만달러(약 28억원)를 넘어섰다. 지난 11일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비플’로 알려진 마이클 윈켈만의 디지털 아트 콜라주 작품 ‘매일’이 6934만달러(약 783억원)에 낙찰되면서 NFT 기반 디지털 예술품 거래가 기존의 판매 경로에 도입되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암호화폐로도 결제…253억원 대박허스트는 커런시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에 앞서 암호화폐로 작품을 판매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최근 판화 작품 ‘벚꽃’ 연작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결제 수단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시켰다. 통상 미술품의 판화는 50점, 100점 등 한정판으로 제작해 판매된다. 하지만 허스트는 벚꽃 연작을 주문이 들어온 만큼 찍어냈다. 벚꽃 연작의 판화를 제작한 헤니에디션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6일간 진행된 온라인 판매에는 67개국 4000여 명의 구매자가 몰렸다. 장당 3000달러(약 339만원)인 판화 7481점이 팔려 2240만달러(약 253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허스트조차 “이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못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다.

이번 벚꽃 연작 판매에서 주목되는 건 구매자가 작품 실물을 보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헤니에디션 측은 구매자들이 원할 경우 영국에 있는 자체 수장고에 작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을 샀지만 직접 소장하지는 않는 셈이다. 허스트는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돈과 예술의 가치 개념에 대한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