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서 '4·3 피해보상' 의결한 순간…제주법정 '눈물바다'

입력 2021-03-16 14:37
수정 2021-03-16 14:57

"오늘 재판을 받기 위해 저승에서 온 330여 명의 영혼에 묵례를 올린다" (제주 4·3사건 수형인 유족 대표 박영수 씨)

제주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과 수형자의 명예 회복의 길을 여는 법안이 16일 오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시각 제주지방법원에선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법에 정의돼 있다.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장봉기하자 군경이 진압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최대 3만여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당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서울·세종청사 국무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새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과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률안을 통합·조정한 것이다.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형(刑)을 받은 2500여 명의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 조항을 신설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가 일괄해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하면 법무부 장관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또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했다. '국가는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고 명문화했다. 행안부는 희생자의 피해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용역 결과가 나오면 추가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안에는 추가 진상조사의 객관성과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희생자 및 유족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치유와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규정도 담겼다. 새 법안은 공포 후 3개월이 지난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4·3사건법 개정안에 담긴 수형인 특별재심과 위자료 등 희생자 피해보상 기준 마련이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오전 제주지법에서는 제주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누명을 벗었다.

제주지법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법 군사재판을 거쳐 옥살이한 고(故) 박세원 씨 등 13명의 재심 사건 첫 재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포함해 총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 공판을 차례로 진행했다. 이날 법정에 오르는 피고인은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 생존 수형인 2명으로 대부분 유족이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7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한 직후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된 피고인들과 그 유족이 이제라도 그 굴레를 벗고 평안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판결이 내려지자 201호 법정 안에는 박수와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유족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