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백신 이기주의 있는 한 집단면역 없다

입력 2021-03-16 17:47
수정 2021-03-17 00:11
최근 미국과 유럽 각국 등 부유한 선진국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자국에 백신 보급률을 높여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일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려면 세계가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한다. 집단면역이란 집단 구성원의 특정 비율 이상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을 갖게 돼 질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를 위해선 특정 국가가 내부 집단면역을 이뤄도 별 소용이 없다. 코로나19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확산되고 있는 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단순 변이종에 불과하겠지만, 더 전염성이 강하거나 치명적인 변이종이 나올 수도 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는 이미 여럿 나왔다. 작년 12월 이후 발견된 변이종들은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비해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작년 12월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B.1.1.7)는 기존 바이러스에 비해 전염성과 치명률이 모두 높다. 남아프리카에서 나온 변이종(B.1.351)도 전염성이 높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변종(P.1)은 특히 위험하다. 지역사회 초반 감염률이 거의 80%에 달했다. 재감염 확률은 61%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코로나19가 더 확산될수록 변이종은 더 많이 나온다. 앞서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 집단 내 60~70%가 면역력을 가지면 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수치에 도달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기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기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변이종에 대한 면역력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개별 국가도 집단면역을 이룰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 국가가 집단면역을 이룬다쳐도 다른 나라에서 변이종이 생기면 별 의미가 없다. 모든 외국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지 않는 한 변종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어서다. 물론 나라 전체의 국경을 완전히 닫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업무나 여행 목적으로 외국을 오가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외국 변종 바이러스를 유입시킬 수 있고, 이 중 일부는 기존 백신이 제공하는 면역력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변이종이 발견될 경우 기존에 나온 코로나19 백신을 일부 바꿔 대응할 수 있기는 하다. 모더나나 화이자 등이 개발한 mRNA 기반 백신이 그렇다. 하지만 이 과정은 빠르게 이뤄지기 힘들다. 변이종이 유입된 나라의 경제·사회가 재봉쇄에 들어가 타격을 입은 뒤에야 변이종 대응 백신을 보급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세계 각국의 백신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 코로나19 확산과 변이종 발생 가능성이 줄어든다. 현재 개발도상국에선 백신 보급량이 충분하지 않다. 애초에 많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극빈국 등을 지원하는 백신사업인 코백스(COVAX) 프로그램을 통하더라도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각국에서 광범위한 예방접종을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전망이다. 이들 국가에선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와 교통망이 부족한 탓에 백신 보급 속도가 늦다.

현재로선 존슨앤드존슨의 새로운 코로나19 백신이 개도국 백신 보급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콜드체인(저온유통망)이 필요하지 않고, 한 번 접종으로도 면역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 자국 우선주의가 걸림돌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종식되려면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돼야 한다. 바이러스가 가장 빨리 퍼지고 있는 지역에 가장 효과적인 백신을 공급해야 한다. 각국이 코로나19를 세계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기 전까지 코로나19는 계속 확산할 것이다. 서방 선진국들이 국제 공조 필요성을 무시하고 자국민의 백신 접종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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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