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역 건설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방침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고 있다. 최대 28조원이 소요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예타를 면제하는 특별법을 일방 통과시키더니, 보름 만에 경부선 철도 부산구간 지하화 사업 예타 완화 방침을 내놨다. ‘완화’라고 하지만 부산에선 ‘면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당 소속 단체장의 ‘성희롱 사퇴’로 치러지는 내달 보선에서 이기겠다고 재정의 둑을 이렇게 쉽게 허물어도 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민주당 K뉴딜본부장을 맡은 이광재 의원이 그제 부산을 방문해 예타 문턱을 낮춰 반드시 완성하겠다고 한 경부선 부산구간(16.5㎞) 지하화엔 사업비만 1조5000억원 이상 들어간다. 기획재정부는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민자사업 추진을 권고했지만, 여당은 K뉴딜로 이름 붙여 재정사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더욱이 사업성 검증도 안 된 상태에서 추진을 기정사실로 못 박으며 “정부는 군말 말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고, 재정 지원액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인한 재정 낭비를 막자는 취지지만 요즘에는 정작 필요한 곳에 면제를 남발하며 예타를 무력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달까지 예타 면제규모는 총 122건, 97조원에 이른다. 이명박(61조원)·박근혜(24조원) 정부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많다. 청년 일자리 사업부터 대형 SOC까지 전방위로 면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달만 해도 여당 대표가 구청장 재선거를 치르는 울산 남구를 방문해 공공의료원 건립 예타 면제를 약속했다. 전라선 KTX,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광주신공항 예타 면제를 시사하기도 했다. 예타가 선거 ‘매표(買票)용’으로 전락해 껍데기만 남은 꼴이다. 과거 ‘토건(土建)정부’라고 맹비난했던 현 정부가 ‘신(新)토건정부’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재·보선 한 번 치르는 데 이 정도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얼마나 예타 면제를 쏟아낼지 짐작조차 어렵다. K뉴딜 중 75조원이 지역균형 뉴딜에 투입될 예정이어서, 지자체들 사이에선 ‘예타 면제 대기표를 뽑아놨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가뜩이나 나랏빚이 급증하는 판에 염치도, 국민 눈치보기도 사라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