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직판여행사 노랑풍선이 메자닌(주식연계채권) 발행으로 2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조달했다. 노랑풍선은 지난 11일 "전환사채 100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 100억원을 발행해 총 200억원의 재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노랑풍선은 여행상품 판매를 통한 수입이 사실상 '제로(0)'인 상황에서 지난해 전체 매출(200억원)에 해당하는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탈리아어로 건물 1층과 2층 사이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메자닌(mezzanine)'은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단계에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을 말한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챙길 수 있고, 내리면 만기까지 보유해 원리금을 상환받을 수 있다.
여행업계 전체가 힘겨운 보릿고개를 지나는 상황에서 노랑풍선이 분위기 반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투어, 모두투어에 이은 업계 3위 노랑풍선이 코로나 사태 이후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영준 노랑풍선 경영지원실 이사는 "포스트 코로나 새롭게 재편될 여행시장에서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재원 마련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트 코로나 점유율 상승 기대감 반영노랑풍선이 전환사채를 발행해 200억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향후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금은 여행수요가 사라진 상태이지만 코로나 종식과 함께 수요가 폭발해 'V자' 반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적이 바닥까지 떨어진 여행주의 주가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업계 등에선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 안정성을 강화한 노랑풍선을 포스트 코로나 여행시장을 주도할 '유망주'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노랑풍선 측도 이러한 시장 분위기를 고려해 이번에 발행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표면·만기이자율을 모두 0%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출발드림투어로 시작한 노랑풍선은 여행상품을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는 여행사다. 2019년 기준 직접판매 비중이 75~80%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업계에선 여행상품을 대리점을 통해 간접 판매하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은 '간판'여행사, 노랑풍선과 참좋은여행처럼 직접 판매하는 곳은 '직판'여행사로 분류한다.
직판여행사는 직거래 방식의 유통구조에서 오는 가격과 서비스 경쟁력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작은 회사규모가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대형여행사에 비해 몸집이 작은 만큼 코로나 충격이 덜한 데다가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동력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 기준 노랑풍선의 직원 수는 500여 명으로 하나투어의 5분의 1, 모두투어의 3분의 1 수준이다. 자회사도 2018년 지분을 100% 인수한 노랑풍선시티버스, 30% 지분을 보유한 해외법인 옐로우벌룬재팬 등 두 개가 전부다. 부산에 설립한 지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지난해 11월 폐쇄했다. 영업적자 66억원, 사옥 5개층 임대 전환 노랑풍선은 지난해 6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9년 역대 최고를 기록한 768억원 매출이 74% 급감한 200억원에 그치면서 21억원이던 적자폭이 무려 221%나 더 커졌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노랑풍선이 재정 안정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사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고정비 지출을 줄이면서 실적은 바닥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랑풍선은 2019년 1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18년 한차례 고배를 마신 노랑풍선 입장에선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코스닥 입성의 막차를 탄 셈이다. 김영준 경영지원실 이사는 "지난해 실적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경영, 재무적으로는 당장 투자를 받지 않아도 몇 년간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작년 3분기 공시 기준 노랑풍선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3억원, 금융자산은 190억원이다.
비용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 부담도 확 줄어든 상태다. 노랑풍선은 지난해 3월부터 전체 500명 직원 가운데 70%가 유급휴직에 들어갔다. 올 6월까지는 정부의 고용안정지원금을 활용한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본사 예약센터와 지사 폐쇄 그리고 자진퇴사가 더해지면서 직원 수는 360명으로 줄은 상황. 지난해 유급·무급휴직을 통해 월 평균 20억원에 달하던 인건비 부담은 휴직과 직원 수 감소로 80% 이상 줄었다.
올해부터는 임대 수입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중구 저동 사옥 일부를 임대로 전환하면서다. 이전까지 전체 11개 층 가운데 10개 층을 사용하던 노랑풍선은 사무공간을 6개 층으로 줄이고 4개 층을 임대로 전환했다. 이미 계약을 마치고 입주까지 마무리된 상태다. 여행상품 판매실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고안한 자구책으로 이전까지 없던 고정 임대수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노랑풍선은 지난 2016년 서울 저동 사옥을 총 342억원에 매입했다. 올 상반기 차세대 OTA 플랫폼 오픈 예정 노랑풍선은 이번 메자닌 발행으로 확보한 200억원을 차세대 통합 OTA(온라인여행사) 플랫폼 개발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플랫폼은 노랑풍선이 코스닥 상장 전인 2018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오던 프로젝트다. 기존 패키지와 에어텔(항공+호텔) 여행상품 외에 현지 관광상품, 교통편, 입장권, 식당 등 예약 기능을 갖춘 온라인 여행 플랫폼은 2019년 상장과 동시에 본격화됐다.
1년여 준비를 거쳐 지난해 상반기 선보이려던 계획은 코로나 사태로 발목이 잡혔다. 코로나 이후 여행패턴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존에 설정한 콘셉트와 기능에 대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계획했던 플랫폼 개발이 늦어지면서 증권업계 등 일부에선 노랑풍선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노랑풍선 입장에선 메자닌 카드로 차세대 플랫폼 개발에 필요한 재원 확보는 물론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는 일석이조 효과를 본 셈이다.
노랑풍선의 차세대 플랫폼의 정식 명칭은 '노랑풍선 OTA 통합 플랫폼'이다. 현재 개발을 마치고 최종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플랫폼 콘셉트는 'DIY(Do It Yourself)'. "항공과 숙박, 관광, 액티비티, 렌터카 등을 고객이 직접 검색해 고를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게 노랑풍선 측 설명이다.
노랑풍선 관계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호 여행지와 상품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갖췄다"며 "200억원의 신규 재원을 확보하면서 차세대 플랫폼의 기능과 서비스 고도화 작업에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