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북본부장이 12일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고인은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투기 의혹 대상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광명시흥신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투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LH 투기 의혹 조사 대상을 신도시에서 더 확대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국적인 광범위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LH가 주도하는 신도시와 도심 공공 개발은 사실상 멈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투기 전모 다 밝혀야”부동산 전문가들은 그동안 광명시흥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LH 직원의 공공연한 투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LH 투기 의혹 1차 조사로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투기 전모를 다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LH 직원이 내부 정보를 투기에 이용했을 것이라는 정황은 계속 나오고 있다. LH가 이날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광명시흥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직원 중 김모씨와 강모씨, 박모씨 등 3명은 2010~2015년 광명시흥본부 업무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공급 대책 대부분이 공공 주도 형태다. 정부는 지난해 ‘5·6 대책’과 ‘8·4 대책’에서 공공재개발과 공공참여형 재건축을 각각 내놨다. 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이 조합과 함께 정비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2·4 대책’에서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주민들이 신뢰를 잃은 LH가 전면에 나서는 개발의 당위성을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정부는 LH를 해체하는 수준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1만여 명의 직원을 가진 거대 조직인 LH를 대수술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4 대책 등으로 공공 개발을 주도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물러나게 된 상황이어서 3기 신도시 등 공급 확대 정책 전반에 큰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도시 투기 의혹까지정부의 1차 조사 결과 발표에도 LH 직원의 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 부동산 대책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2·4 공급 대책을 포함한 부동산 정책은 이미 발표한 계획”이라며 “제시된 일정에 따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공급 대책 중 도심 개발 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서울시 25개 자치구 대상 사업설명회를 열어 500여 건에 이르는 민간 컨설팅 및 상담을 진행했다”며 “이들 중 도심 개발사업 여건이 우수한 후보지를 선정해 이달 말까지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15만 가구 규모의 잔여 신규 공공택지 입지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광명시흥신도시가 아닌 다른 공공택지 후보지에서도 투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에서 토지 거래량이 급증하는 등 투기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 김포 고촌의 경우 작년 12월 토지 거래량이 161건으로, 전월(30건) 대비 다섯 배 이상 늘었다. 고촌읍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외지인이 찾아오면서 거래 가격이 3.3㎡당 90만~100만원 정도로 20만원 이상 뛰었다”며 “현재 호가는 125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또 다른 후보지로 꼽히는 경기 하남 감북, 고양 원흥·화전 등도 토지 거래량과 가격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국토부는 신규 공공택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투기 분위기가 감지될 경우 후보지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문제는 이들 택지가 서울 접근성이 좋은 알짜 입지라는 점”이라며 “입지 경쟁력이 높은 신규 택지를 선정해 주택 수요를 분산시킨다는 정부가 다른 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서민준/전형진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