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차 조사 결과 발표에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민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자체 조사 결과가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양상이다. “공급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 등 최근 정부 발표가 추가적인 의혹이 많지 않다고 예고했던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공정과 기회평등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 사안으로 보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정부가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리 3기 신도시 취소하라”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기 신도시와 관련해 400여 건의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LH와 관련된 청원 건수는 1300여 건으로 더 많았다. 전체 추천 순으로 봐도 ‘제3기 신도시 철회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7만여 명의 동의를 받아 3위에 올랐다. 한 청원인은 “우리 집, 내 땅, 우리 이웃들을 헐값에 내몰면서 공무원들은 엄청난 이득을 챙겨왔다는 걸 현실로 확인했다”며 “3기 신도시 개발계획의 완전 철회를 요청한다. 우리는 지금처럼 살고 싶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공직자들의 파면이나 징계, 환수는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른다”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는 것이 막대한 대출을 받은 투기꾼들을 확실하게 벌주는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들도 3기 신도시 지정 철회 요구에 나섰다. 시민모임인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은 이날 정부 부동산 대책을 비판하는 버스 광고 시위를 시작했다. 노란색 버스 전면에 ‘25번의 대국민 사기극에 분노한다’ ‘쇼는 이제 그만, 대통령은 집값 원상회복 약속 이행하라’ 등의 문구가 부착됐다. 이 단체는 다음달까지 서울 주요 지역을 돌며 시위할 예정이다.
지난 10일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기 신도시 전면 재검토와 LH 해체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전국 65개 공공주택지구 토지주로 구성됐다. 협의회 관계자는 “투기꾼들이 신도시 발표 전부터 땅을 사들여 원주민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며 “3기 신도시 사업을 재검토하고 LH를 즉각 해체하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등 농민단체 회원들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도 LH 비리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1주택자도 투기꾼 취급하며 규제를 강화하더니 정작 공직자들이 내부 정보로 투기행위를 했다”며 “이런 정부를 더 이상 어떻게 믿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LH 직원들이 개발 예정지 땅을 매입할 때 그 조직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현재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와 있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게 공정과 기회평등인가”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살고 있는 직장인 A씨(39)는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까지 고민하던 이들은 ‘영털’(영혼까지 털림)인 상황”이라며 “증권사처럼 국토부와 LH 등 관계자들의 토지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B씨(42)도 “공직자들의 투기는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됐을 것”이라며 “파면돼도 투기로 보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특히 주거 마련은 물론 취업 기회까지 박탈당한 청년층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동산 담당 공공기관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활용해 투기를 했다는 점에서 공정성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며 “촛불 시위로 탄생한 이번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국민적 공분이 더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지는 자세와 사태 수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내부 정보 이용은 심각한 불평등·불공정”이라며 “도심의 공공주도 정비사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커진 데다 공정의 가치까지 흔들리면서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이 치명타를 맞고 있다”며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회피보다는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진석/전형진/장현주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