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치밀한 탐구

입력 2021-03-11 17:48
수정 2021-03-12 03:14
지난 4일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권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시장주의 및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물신숭배 사상”(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라는 등 자유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도 쏟아진다. 반면 야권은 현 정부 들어 자유가 크게 억압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방이 격화되고 있지만 자유가 무엇이고 왜 중요하며 현실에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민경국 교수의 자유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평생에 걸쳐 자유를 연구해온 저자는 ‘강제가 없는 상태’가 자유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강제는 타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를 위협하는 행동을 뜻한다. 이른바 소극적 자유다.

저자는 쉽게 와닿지 않는 이 설명을 여러 사상가가 주창한 자유의 개념과 비교하며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예컨대 존 스튜어트 밀은 ‘해악 원칙’을 주장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금지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기술 발전을 해악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신기술이 도입되면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가 중요하다는 견해도 비판의 대상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실질적 자유를 보장한다며 정부의 규제와 복지정책 등을 합리화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자유와 후생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착각한 결과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 가난하면서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 수 있고, 부유하면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가난한 농부는 전자, 독재자의 측근은 후자에 해당한다.

자유로운 시장처럼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생적 질서’를 최대한 지켜야 하며, 국가의 섣부른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국가의 개입이 자유는 물론 질서까지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북한이다.

이런 논증을 토대로 저자는 윤리, 법치, 민주주의 등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과 자유를 조화시켜 나갈 방법을 차근차근 제시한다. 이론서가 다 그렇듯 이 책도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현실과 완벽히 맞아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노(老)교수의 자유에 대한 치밀한 탐구는 독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