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엄숙하다. 연주자는 물론 청중도 격식을 갖춘다. 옷차림부터 공연장 에티켓까지 지킬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탱고는 정반대다. 박자가 어긋나도 연주가 계속된다. 관객들도 신나게 몸을 흔든다. 이 때문에 탱고가 유럽에 퍼졌을 때 사교계에선 조잡하고 속된 음악이라고 치부했다.
오늘날 탱고의 위치는 달라졌다. 더 이상 저급하게 보지 않고 클래식처럼 깊이를 갖춘 음악으로 바라본다. 아르헨티나 부둣가 클럽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을 이렇게 바꾼 것은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였다. 그는 속되면서도 아름답고,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성 있는 탱고를 선보였다.
우리가 탱고를 떠올릴 때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고별무대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프로그램에서 선택한 곡도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였다.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탱고 아파시나도가', 영화 ‘물랑루즈’에서 ‘록산느의 탱고’가 흘러나온다. 지금도 클래식 연주자들이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하는 곡들이다. 유행가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피아졸라는 트로트를 전 세계에 퍼뜨리고, 예술가들이 인정하는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셈이다.
피아졸라의 음악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엔 뉴욕 할렘가를 떠돌았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극복하려고 음악을 배웠다. 그가 탱고를 연주하자 평론가들은 클래식 연주자와 비교하며 손가락질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난만 받았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열등감을 예술로 승화해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를 창조했다.
피아졸라에게 감화받은 음악인들은 앞다퉈 음반을 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1996년 ‘피아졸라 예찬’을 냈고 첼리스트 요요마는 피아졸라의 대표 레퍼토리를 담은 음반 ‘탱고의 영혼’으로 1999년 그래미상을 차지했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클래식 연주자들이 그에게 빠졌을까. 대표곡 ‘리베르 탱고’에서 들리듯 그의 음악에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춤추듯 연주하면서도 서정성이 짙은 음색을 들려준다. 청중은 슬프면서도 흥겨운 감정에 젖어든다.
11일은 피아졸라가 탄생한 지 100년 된 날이다. 그는 생전 “내 음악은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2020년에도, 아니 3000년에도 울려 퍼질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아르헨티나에서 2만㎞ 이상 떨어진 한국에서도 그를 기리는 음악회 준비에 한창이다. 그의 호언은 허세가 아니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