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인조로 빚어낸 '전람회의 그림'…새봄 알린 거대한 화음

입력 2021-03-10 22:01
수정 2021-03-10 23:53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대편성 관현악곡으로 새봄을 알렸다. 1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필하모닉 신춘음악회’를 통해서다. 관악 부문을 중심으로 악단 편성을 늘리고 계절에 맞는 레퍼토리를 선사했다. 한경필하모닉의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된 공연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움츠러든 관객들에게 봄기운을 가득 불어넣었다.

지휘자 지중배(사진)가 이끈 이날 공연에서 한경필하모닉은 프란츠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 1번 E플랫장조’,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려줬다. 류태형 음악평론가가 진행과 해설을 맡아 온라인 관객들의 공연 감상을 도왔다.

우선 악단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뒤 대부분의 관현악단은 공연에서 악단 규모를 줄였다. 서울시향은 올해 첫 공연에서 관악기를 뺀 체임버오케스트라로 메인 곡을 연주했다. 다른 악단들도 올해 첫 공연에서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다. 한경필하모닉도 지난해 5월 신춘음악회에서 실내악 레퍼토리로 공연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한경필하모닉은 목관악기를 3대씩 배치하는 3관 편성을 시도했다. 목관주자와 금관주자 수가 대폭 늘어 총 82명의 단원이 호흡을 맞췄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관객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다. 관악기의 웅장한 음량은 오케스트라 화음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경기병 서곡’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금관악기의 호쾌한 연주에 이어 멜로디가 계속 변주됐다. 희가곡(오페레타)의 서두를 알리는 곡이라 쉼 없이 청중의 흥을 돋워야 해서다.

이날도 경쾌한 관악기 소리에 맞춘 현악주자들의 역동적인 활놀림이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했다. 기병이 질주하듯 울려대는 타악기에 현악5부의 소리가 얹혔다. 여기에 관악주자들이 화려한 팡파르로 봄의 역동성을 표현해냈다.

협연자로 나선 첼리스트 한재민(15)의 역량은 놀라웠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 1번’을 원숙하게 소화해냈다. 첫 악장부터 호른과 2중주에서 균형을 맞추며 조화를 이뤄냈다. 3악장에선 처연하게 첼로 카덴차(독주자 기교)를 선사하다가 4악장에 접어들어선 광기어린 첼로 연주를 선보였다.

한재민은 클래식계가 주목하는 신예다. 독일 도차우어 국제콩쿠르를 비롯해 헝가리 다비드 포퍼 국제콩쿠르, 일본 오사카 국제콩쿠르 등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나이답지 않게 완성도 높은 연주가 돋보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공연의 열기는 메인 곡인 ‘전람회의 그림’에 이르자 절정에 달했다. 이 곡은 무소르그스키가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10가지 회화 작품에 피아노 선율을 붙인 작품이다. 모리스 라벨이 이를 관현악곡으로 바꿨다.

대중에게 익숙한 곡이지만 연주하기는 까다롭다. 목관주자와 금관주자의 역량이 특히 중요한데, 풍성한 음량을 내면서도 서로 겹치지 않게 화음을 맞춰야 해서다. 듣다 보니 실제로 그림을 감상하듯 생생한 인상이 떠올랐다.

다채로운 악기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프의 우아한 멜로디와 첼레스타(건반악기 일종)의 영롱한 음색이 관객들을 상상 속의 전람회로 끌어당겼다. 종소리처럼 울리는 차임벨 연주도 몰입도를 높여줬다.

곡 사이마다 배치된 간주곡 ‘프롬나드(산책)’가 공연에 깊이를 더했다. 발걸음을 차분히 옮기며 명상에 잠기듯 공연이 주는 여운을 음미하는 시간이다. 열 번째 곡 ‘키예프의 대문’이 공연 피날레를 장식했다. 꿈을 깨우듯 웅장하고 장엄한 선율이 터져나왔다.

류 평론가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잔잔하게 선율이 흐르다 웅장하게 마무리됐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색채가 공존했던 공연”이라고 말했다. 앙코르 곡으로는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 중 서곡을 들려줬다. 희망찬 봄을 일깨우는 무대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