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씨(26)의 하루는 펀드매니저와 다르지 않다. 눈을 뜨자마자 야간 미국 시장의 시황을 파악한다. 아침식사 동안에는 증권사 보고서를 탐독한다. 애널리스트들이 텔레그램 채널에 핵심 요약을 올려줘 간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아침에는 친구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공유해준 시간외거래 급등 종목 리스트와 유튜브에 올라온 주식 관련 영상을 보며 하루를 준비한다. 주부 K씨(38)는 매일 아침 경제신문을 보며 시작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틈틈이 유튜브 주식방송도 본다. 밤에는 미국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잠이 든다. 직장인은 물론 학생, 주부, 노년층을 가리지 않고 주식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주식, 공모주, 해외주식, 상장지수펀드(ETF) 등 투자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인스타보다 모바일 주식거래
주식활동계좌 4000만 개, 실질 주식투자인구 800만 명 시대에 A씨와 같은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카페와 지하철, 식당 등 어디서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들여다보는 투자자를 볼 수 있다. 직장 사무실에서는 테슬라 창립자 일론 머스크를 추종하는 ‘머스크’파와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대표를 찬양하는 ‘돈누나’파 등 팬덤도 형성됐다.
모바일앱 시장조사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3월 초 기준으로 국내 구글플레이 인기 앱 상위 50위에서 키움증권의 MTS ‘영웅문S’는 16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SNS 인스타그램(28위)보다 높은 순위다. NH투자증권의 나무 MTS도 45위로 상위권에 진입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서강대 등 주요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주식투자 게시판이 개설됐다. 장이 활발한 날에는 이곳에서 수백 개의 게시물이 매일 생산되고, 연애상담 게시판보다 주식 게시판에 많은 글과 댓글이 달린다.
투자 수준도 상당히 높다. 증권사 마케팅부문 직원 B씨는 최근 회사 유튜브에 올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투자 관련 영상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다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일반투자자들이 SPAC의 정의 등 기초개념 수준의 내용을 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SPAC의 신주인수권(워런트) 매매법이나 합병협약(DA) 이후 투자전략 등 증권 및 자산운용사 실무자들이 활용하는 수준의 정보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매매행태와 시장 대응 능력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증권사 ‘1조 클럽’ 입성주식계좌 급증은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한동안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던 리테일 브로커리지(개인투자자 위탁매매)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지난해 미래에셋대우는 영업이익 1조1284억원, 순이익 8183억원을 기록했다. 증권사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954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1.58% 급증했다.
증권가에서 ‘꿈의 영역’으로 여겨진 1조원대 실적 뒤에는 개인투자자 유입으로 인한 증시 거래대금 폭발이 있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36조2689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9조2992억원)의 네 배에 육박한다. “성장산업 투자 문화 지속 가능”전문가들은 직접투자 주식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대 초반의 ‘바이코리아 열풍’이나 2000년대 중반 ‘인사이트펀드 유행’처럼 순간의 폭락 이후 관심에서 멀어질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밸류주식본부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국내시장은 인터넷과 배터리, 게임 등 장기 성장이 가능한 유망업종을 중심으로 재편됐고, 개인이 집중 매수한 것도 이런 기업들”이라며 “실적과 주가가 등락을 반복하는 경기민감주와 달리 이들은 꾸준히 성장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개인을 주식시장에 붙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원/전범진/전예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