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건축물의 잔해 가운데 반쯤 허물어진 아파트가 있다. 초라하고 그늘진 콘크리트 더미 너머, 반듯한 초고층 아파트들이 우뚝 섰다. 그리고 그사이에 마치 다른 세계의 일원인 듯 단정한 교회 건물 하나가 보인다. 이 사진은 정지현의 ‘재건축현장’ 연작의 하나로 서울 강남에서 철거 중인 한 아파트 단지를 담은 것이다.
‘집’이란 단어는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고, 가족을 품어주는 포근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택이나 역사가 담긴 집을 보존한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조금 다르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아파트들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고 세련된 새 아파트가 등장하면, 이내 폐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서울은 늘 이렇게 아파트를 허물고 짓는 모습이 교차한다.
작가는 특히 철거되는 건물의 한 층을 붉게 칠해, 경제적 이익 실현을 위해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거주 공간을 편의성과 자산의 가치로만 따지는 우리의 현실을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해 행위예술적 요소를 더한 것이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