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명의 모셔오자"…중소병원들 '영입경쟁'

입력 2021-03-10 17:22
수정 2021-03-18 18:29
명의(名醫)들이 거처를 옮기고 있다. 4차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 등에서 명예퇴직한 교수들이 속속 2·3차 병원에 둥지를 틀고 있어서다. 중소 병원은 병원 인지도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명의들은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윈윈’이란 설명이다.

올해 명의 영입에 가장 활발히 나선 곳은 차병원을 운영하는 성광의료재단이다. 연세의료원장을 지낸 윤도흠 전 연세의대 신경외과 교수가 지난달 25일 성광의료재단 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방암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노동영 전 서울대 의대 교수도 지난달 24일부터 강남차병원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강남차병원이 여성암 전문 병원으로 발돋움하는 데 노 전 교수의 명성이 큰 힘이 될 것으로 의료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김기봉 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이달 명지병원 심장혈관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양준모 전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교수는 양지병원 의생명연구원 원장 명함을 팠다. 김응권 전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같은 달 새빛안과에서, 김희중 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예손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주치의와 세브란스병원장을 지낸 이병석 산부인과 교수는 얼마 전 하나로의료재단 총괄원장으로 새출발했다. 구순구개열 등 소아성형으로 유명한 오갑성 삼성서울병원 교수 역시 3월부터 강북삼성병원에서 메스를 든다.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전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지난해 9월 부민병원 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0년대 초 의대를 졸업한 이들은 국내 의료 서비스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때 흰 가운을 입었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된 데 이어 서울아산병원(1989년), 삼성서울병원(1994년) 등 대형 종합병원이 차례로 문을 열자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으로만 퍼지던 ‘명의’가 각 대학병원의 ‘얼굴’이 됐다. 올해 정년을 맞은 교수들은 당시 50대 초·중반으로, 각 진료과 과장을 맡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의료계 관계자는 “대학병원들이 ‘명의 마케팅’을 벌이던 2007~2008년 전성기를 누린 의사 중 상당수가 최근 들어 정년을 맞이했다”며 “이들에 대한 중소 병원의 수요가 꾸준한 만큼 명의들의 이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