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석 변호사 "한국어 서툴다고 억울한 일 당하게 둬선 안되죠"

입력 2021-03-09 17:56
수정 2021-03-10 00:23
“한국에는 25만 명 안팎의 러시아어권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한국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이들을 위해 앱을 개발했습니다.”

지난 1월 한국 법을 러시아어로 알려주는 앱 라이프인코리아(LifeInKorea·Жизнь в Корее)를 개발한 고민석 변호사(32·사진)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앱을 내놓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는 외국인은 영어와 한국어 모두에 서툰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동안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고 변호사는 《러시아어 사법통역과 생활법률》(2017) 등 러시아어로 한국 법을 설명하는 책도 두 권 펴낸 바 있다. 그는 “앱은 러시아어권 외국인이 두 권의 책 내용을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발했다”고 말했다.

“책을 썼지만, 정작 책을 못 사는 분이 많았어요. 책을 사려면 한국 포털을 통해 한국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에겐 그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거든요. 접속에 성공하더라도 한국어로 결제까지 하는 건 (그들에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앱에는 주택임대차계약,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 러시아어권 외국인이 한국에서 주로 맞닥뜨리는 분쟁 상황이 12개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다. 상황별 사례와 판례에 대한 설명도 러시아어로 확인할 수 있다. 고 변호사는 “불법입국자란 이유로,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고 변호사는 왜 사비를 들여 러시아어권 사람들을 돕고 있을까. 그는 대학 시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유학 이야기를 꺼냈다.

“2008년 당시 러시아는 스킨헤드(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가 동양인에게 무차별적 테러를 일삼던 시기였어요. 그때 제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주던 과외 교사가 고려인이었는데, 러시아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그분은 저보다 훨씬 큰 불안감에 시달리며 곧 귀국할 저를 부러워했어요. 이때 경험을 계기로 고려인을 돕는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했고, 자연스레 도움을 청하는 러시아어권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시작했죠.”

한국에서 2016년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2년간의 원격수업을 통해 지난해 1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비테대에서 법학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고 변호사는 “러시아법을 공부하면 한국 법을 러시아어로 설명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주한 러시아어권 외국인이 더 좋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