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다

입력 2021-03-09 17:11
수정 2021-03-10 00:25
비바람에 파도가 거센 바다 위에서 소년이라기엔 성숙하고 아직 성인은 되지 못한 남자가 어딘가를 응시한다. 파도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것은 한 명이 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보트. 그의 옆에는 상어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놓여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상어다. 상어 떼에게 청새치를 빼앗기고 겨우 살아 돌아온 노인을 달래던 소년이 성장한 뒤 노인의 복수를 한 것이다.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전시 중인 쿠바계 미국인 화가 헤르난 바스(43)의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젊은이와 바다(The young man and the sea)’에는 다양한 서사가 담겨 있다. 바다는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보트피플’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 속 젊은이에게선 더 이상 그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제목 ‘모험, 나의 선택(Choose your own adventure)’처럼 자신의 온전한 선택으로 이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됐다는 어른스러움이 배어난다.

바스는 특유의 낭만적인 색채로 청년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는 2007년 이후 만든 작품과 신작 5점 등 20점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 세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 성장통을 담았다.

작가는 고전문학, 종교, 영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얻은 영감을 자신만의 서사로 엮어 회화로 표현한다. 2010년 전후의 작품에서는 배경 속에서 주인공인 소년을 애써 찾아내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적게 표현돼 있다. 2009년 작품 ‘생각의 흐름(The Thought Flow)’이 대표적이다. 소년의 주변 환경은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지만 멀리 갈수록 배경은 흐릿하다. 소년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표현이다.

이 인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화면의 전면으로 나온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소년은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서사를 주도한다. 2013년 작품 ‘영적 스승(Guru)’에서는 조금 더 자란 모습의 소년이 화면 가운데에서 정면을 마주한다. 신작 ‘젊은이와 바다’ 연작에서는 보다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전시는 5월 27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