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의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장들이 세입자와의 이주비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시 권고에 따라 법적의무가 아닌 세입자 이주비 보상에 나섰지만, 기본적인 행정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 기간이 늦어지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서울 주택 공급난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입자 보상 위한 기초자료도 못 봐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방배동 방배13구역은 세입자와의 이주비 갈등이 불거져 철거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조합은 당초 이달부터 9월까지 이주를 완료하고 철거 및 일반분양 등에 나설 계획이었다. 정비업계에선 이주가 최대 2년까지 지연될 가능성도 점친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541의 2 일대에 자리잡은 방배13구역은 방배5구역에 이어 강남권에서 두 번째로 큰 단독주택 재건축이다. 재건축 이후 34개 동, 2296가구의 ‘방배 포레스트자이’로 탈바꿈한다.
방배13구역은 재개발과 달리 법적으로 세입자에게 이주비를 지불할 의무는 없지만, 서울시의 ‘단독주택 재건축 세입자 대책’과 빠른 사업진행 등을 고려해 보상계획을 세웠다. 서울시는 앞서 2019년 재개발에 준하는 손실보상을 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10% 부여하는 내용의 ‘단독주택재건축세입자 대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일부 조합은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세입자 보상을 사실상 강제해놓고, 최소한의 행정지원도 하지 않아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배13구역은 1년 전부터 세입자 현황 파악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완료하지 못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문제로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전입세대열람원을 수집할 수 없어서다.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법적 근거가 없어 자치구 차원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설명이다. 조합 관계자는 “인력을 투입해 현장조사를 하고 있지만 시간적 비용적 손실이 크다”며 “무엇보다 세입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신빙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방배13구역에선 세입자들이 자체적으로 세운 위원회와 외부 단체가 개입된 위원회 등이 인원을 모으며 조직화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세입자 보상을 하도록 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세입자는 더 강력하게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합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라는 게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 부장은 “민간 사업에 공공이 개입하면서 사업 지연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택 공급난 부추길 수도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은 낡고 오래된 단독주택, 다세대·다가구 등을 허물고 새 아파트 단지를 건립하는 방식으로 2003년 도입됐다. 재개발과 비슷한 사업이지만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양호한 지역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사업은 세입자 대책 부재로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한다는 등의 이유로 2014년 8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사업을 추진 중인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장은 총 43곳이다. 이 중 아직 착공을 하지 않은 곳은 마포구 공덕1구역, 방배13·14구역 등 3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정비업계는 추산했다.
사업성이 좋아 단독주택 재건축이 활발한 방배동의 경우 총 6개 구역이 사업을 하고 있다. 2018년 5월 이주를 시작한 방배6구역(1131가구)도 3년이 다 돼가도록 철거를 끝내지 못했다. 현금청산자가 세입자로 지위를 바꾸는 등 두 가구가 이주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이주를 완료한 방배5구역도 2년 이상의 지난한 갈등을 거쳐 지난해 말 이주가 이뤄졌다.
성흥구 방배13구역 조합장은 “시구합동보고, 각종 소위원회 등 중복적 사전심의로 가뜩이나 사업이 지연된 상황에서 세입자와의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신속하고 원활한 주택공급을 위해선 절차 간소화와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어 행정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현황 파악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후정산 개념으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