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고민하는 중국, 수십년 묵은 '현대판 신분제' 손본다[강현우의 트렌딩 차이나]

입력 2021-03-08 15:17
수정 2021-04-04 00:02

중국이 떨어지는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60년 넘게 지속돼 온 후커우(戶口·호구) 제도를 손본다. 후커우는 한국의 주민등록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원칙적으로 해당 후커우 지역에서만 교육이나 의료 등 사회복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판 신분제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최고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 5일 개막한 전체회의에서 '14·5계획 및 2035년까지의 장기 목표'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회의 마지막 날인 11일 이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14·5계획(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는 후커우 제도를 손보는 방안도 담겨 있다. 중국은 경제 개발을 위해 도시화 비율을 높인다는 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며, 농촌 거주자의 도시 이동을 촉진하려면 후커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전체 인구의 65%를 도시에 살도록 하는 게 목표다. 2019년 기준 이 비율은 60.6%다. 2025년까지 매년 1000만명가량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또 현재 도시 근로자 4억명 가운데 40%는 아직도 후커우가 고향 농촌에 있는 이른바 '농민공'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이번 전인대에서 300만~500만명 규모의 도시에서 후커우 취득 자격을 완화하고, 500만명 이상 도시에선 이른바 '포인트 시스템'을 도입해 거주 기간, 납세 등의 실적을 쌓은 외지인들에게 후커우 등록 길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초안에선 '예외 규정'의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으나 예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거론하지 않았다.

후커우 제도는 2000여년 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시행한 중앙집권적 통제 제도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후커우는 1958년 '중화인민공화국 후커우 등기 조례' 제정 이후 60년 이상 큰 틀을 유지해 왔다.

후커우는 태어난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됐으며, 이후에는 부모의 후커우를 물려받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초기에는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 이동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커 등록된 지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후커우를 바꿀 수는 없었다. 지방 후커우 보유자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려도 부모의 후커우를 물려받은 자녀들은 지금도 여전히 다시 해당 지역으로 돌아가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해당 지역 후커우 보유자만 부동산이나 자동차를 살 수 있고, 연금이나 의료보험도 후커우 지역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학조차 해당 지역 후커우 보유자들에게 가장 많은 정원을 부여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후커우가 중국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해 왔다. 중앙정부도 후커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제도 완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힘센 지방정부의 반대로 전면적 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2019년 300만명 이하 중규모 도시의 후커우 취득 제한을 없앤 게 최근 가장 큰 변화다.

중국이 후커우 개혁을 다시 시도하는 것은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30여년 동안 이어온 한자녀 정책 때문에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의 무역갈등을 계기로 중국 내 경제·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불합리가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새삼스럽게 부상하고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