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사진)의 인터뷰를 두고 서구권이 들썩이는 가운데 마클 왕자비가 사우디아라비아 부총리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선물받은 수십억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공식석상에서 착용한 것을 두고 영국 언론이 연일 맹비난을 하고 있다.
안그래도 해리왕자 부부의 '욍실 비난' 인터뷰 내용으로 영국 왕실의 심기가 불편한 가운데, 그녀에게 귀걸이를 선물한 인물이 '반체제 인사 암살 사건'의 주동자로 알려진 빈살만 왕자인 것으로 알려지자 영국 언론들은 이를 집중적으로 걸고 넘어졌다. "해리 왕자 부부 폭탄 선언 전 세계가 기다려"미 CNN방송은 7일(현지시간) "해리 왕자 부부의 폭탄선언을 전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며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열광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인터뷰는 8일 방영된다.
사전 녹화된 인터뷰는 해리 왕자 부부와 친분을 쌓은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진행했다. 윈프리는 해리 왕자 부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카운티에 정착할 때까지 임시 주거지를 소개해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이번 인터뷰는 방송 전부터 영국 왕실과 해리 왕자 부부의 갈등설을 증폭시키며 관심을 모았다. 마클 왕자비가 인터뷰에서 인종차별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할 것으로 관측되자 영국 언론은 외려 마클 왕자비가 왕실 직원들을 괴롭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왕실은 관련 조사에 착수했고, 해리 왕자 부부 측은 해당 의혹이 부부를 폄훼하려고 몇 년 전에 이미 제기됐던 것이라며 반박했다.마클 왕자비 때리기 나선 영국 주요 언론
영국 '더 타임스'와 '텔레그라프' 등 여러 현지 매체들은 최근 마클 왕자비가 2018년 피지 순방 만찬 때 착용한 귀걸이를 문제삼았다. 귀걸이가 빈 살만 왕세자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이란 이유에서다.
앞서 2018년 3월7일 영국 왕실은 빈 살만 왕세자를 국빈으로 맞이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영국 왕실 주요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 결혼을 앞둔 해리 왕자와 마클 왕자비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가져왔다. 바로 이 귀걸이였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이 공식석상에서 주고 받은 선물이었던 만큼 귀걸이는 마클 왕자비가 아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대신 받았다. 영국 왕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식석상에서 타국의 대표자에게 받은 선물은 왕실에 귀속되고, 개인의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즉 마클 왕자비가 이 귀걸이를 착용하려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공식 발표로 알려져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후 발생했다. 2018년 10월2일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이면서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반정부 인사인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암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때부터 미국과 영국 등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2018년 5월 결혼해 공식적으로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된 마클 왕자비는 2018년 10월23일 카슈끄지가 살해당한 3주 후 피지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문제의 귀걸이 사용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한 암살 사건이 있었음에도 그에게 선물받은 귀걸이를 착용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부터 엘리자베스 여왕이 귀걸이 착용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절차적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 언론들은 "그녀가 독재자로 부터 받은 '피의 귀걸이(blood earrings)'를 스스럼없이 차고 다닌다"며 "게다가 명백한 영국 왕실 자산을 허락도 없이 가져갔다"고 비난하고 있다. 각각 영국과 미국서 여론전 펼쳐
수년 전 불거졌던 논란이 최근 다시 영국 주요 매체에서 보도되는 이유는 '여론전' 성격이 짙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영국 왕실과 해리왕자 부부가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서로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폭로를 이어갔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 CNN 방송은 "영국 언론들은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구성원의 역할에서 물러나기까지 왕실과 큰 불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왔다"며 "이번 인터뷰는 '궁중 음모'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AP통신은 "마침내 관객들이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생활과 절연한 뒷얘기를 들을 때가 됐다"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대서양 양쪽 시청자들이 (미국과 영국 가운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따라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인터뷰가 영국 왕실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매체와 미국 언론들이 각각 양측 입장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영국 왕실과 해리 왕자 부부 간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