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05일(04:1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업성 평가 기관인 한국기업평가가 해외 대체투자 분야 원격실사 대행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1년 이상 이어지면서 해외 실사를 하지 못해 투자 자산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다.
회사가 기존에 사업성 평가를 마친 해외 대체투자 자산들을 대상으로 원격실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한국기업평가의 계획이다. 지난해 미국 풍력발전 단지를 대상으로 원격실사를 단행한 한국기업평가는 이를 바탕으로 최근 표준화된 원격실사 방법론을 개발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알파자산운용과 스프랏코리아,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미국 네브래스카, 일리노이, 텍사스 3개 주에 있는 4개 육상풍력단지의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셀다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 풍력단지는 2012~2015년 사이 운영을 시작했으며 발전 용량을 모두 합하면 852㎿에 달한다. 발전단지의 운영?관리 업무는 GE가 맡고 있다.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8년까지 잔여 전력 공급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자산들이다.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전략적 투자자인 한국수력원자력 등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4개 풍력단지 지분의 49.9%를 인수했다.
◆지난해 7,8월 미국 풍력발전단지 대상 원격실사 진행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이 자산에 대한 투자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던 지난해 6~8월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미국 출장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당 발전단지들에 대한 사업성 평가 작업을 맡았던 한국기업평가가 해외 원격실사 방안을 제시했다. 사업성 평가 작업을 위해 해당 자산의 소유?지분 구조, 비즈니스 모델, 시장 환경, 잠재 리스크 요인 등을 정밀히 검토했던 터라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높은 이해 수준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6~2020년 5년 동안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화력 발전사업, 바이오매스?폐기물 처리사업, 교통?물류사업 등 128건의 해외 대체투자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검토하며 쌓은 전문성과 해외 에너지?인프라 분야 사업성 평가 기관과의 네트워크도 원격실사 사업 진출의 토대가 됐다.
◆현지 협력업체와 함께 협업해 원격실사 진행
4개 육상풍력단지에 대한 원격실사 업무를 수행하게 된 한국기업평가는 평소 협업해오던 미국 현지의 사업성 평가기관 오치드 그룹과 함께 구체적인 원격실사 계획을 수립했다.
현지 영상 제작업체를 선정해 촬영과 편집업무를 맡겼으며 각 발전단지 운영진과 협의해 방문 일정을 조율했다. 한국기업평가 측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검토를 위해 반드시 영상에 담아야 하는 시설물과 인터뷰해야 하는 발전단지 임직원들에 대해 현지 업체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편집과 자막 제작 작업을 감독·협업해 최종 편집본을 전달받았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물은 투자를 검토하는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시연됐다.
신용철 한국기업평가 에너지&인프라 부문장은 국내 증권사, 자산운용사, 오치드 그룹과 현장 방문 일정과 촬영 내용, 인터뷰 대상자 등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정하는 데만 한 달 정도가 걸렸다”며 “드론을 활용해서 발전 단지 주변 전체 모습을 담았고, 풍력 발전기 내부에도 들어가서 시설물 상황을 점검하는 등 꼼꼼하게 자산을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인프라 분야 자산 대상으로 표준화된 방법론 개발
한국기업평가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사전 위험분석 및 평가 → 실사계획 수립(현지 대행업체 선정) → 현장실사 진행 → 실사 영상 및 보고서 작성 → 투자자 대상 설명회 개최라는 표준화된 원격실사 방법론을 확립했다.
한국기업평가가 기존에 사업성 검토 작업을 마친 프로젝트들을 대상으로 투자자가 의뢰할 경우 원격실사를 진행하겠다는 게 한국기업평가의 계획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원격실사 서비스를 미국, 일본, 호주, 유럽 5개국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가 활발하고, 회사와 오랫동안 협업해온 현지 협력업체가 있는 국가들에서만 제공할 예정이다. 원격실사가 가능한 자산 유형은 화력?열병합 발전소, 풍력?태양광?수력 발전소, 유전, 가스전, 도로, 항만, 공항, 데이터센터 등 에너지?인프라 부문 자산들이다.
신 부문장은 “발전소, 도로, 터널 등 에너지?인프라 분야 자산들은 법적 소유권과 자산의 실재 여부를 원격실사를 통해서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주변 상권이나 교통입지, 임차인 현황, 공실 여부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상업용 빌딩, 오피스 빌딩보다 원격실사를 통해 자산 가치를 평가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도 원격실사 통해 대체 실사 방식 인정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도 해외 대체투자 자산에 대한 원격실사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발표한 ‘증권회사 대체투자 리크스 관리 모범규준 마련’ 자료에서 해외 대체투자시 증권사의 현지실사를 의무화하되 감염병 확산 사태 중에는 대체 절차를 마련해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19와 같은 펜데믹 상황에선 현지 전문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원격실사 방식을 현장실사로 인정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모범규준은 이달 중 시행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원격실사 방식이 폭넓게 보급될 경우 투자 검토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장실사의 경우 투자 기관마다 서로 다른 일정과 내부 심의 절차 때문에 동일한 투자 자산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현장실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잦았다. 원격실사의 경우 동영상을 제작한 뒤 투자자들과 공유하면 곧바로 해당 자산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어 투자 검토 과정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제작된 영상물을 임직원 내부 교육과 홍보 등에도 활용할 여지가 적지 않다. 직접 해외 출장을 갔던 인원뿐 아니라 내부 구성원 누구든 영상물을 살펴볼 수 있어 투자 자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신 부문장은 “해당 자산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기존에 제공받았던 원격실사 영상물을 받아보면 이 자산이 어떤 자산인지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며 “원격실사 영상물을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교육용 교재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