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싸움의 기술', 대선판에도 통할까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3-07 10:40
수정 2021-03-07 11:09

여권이 ‘정의로운 검사의 아이콘’으로 치켜세웠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그런 그가 여권을 배신(?)하게 된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8월 법무부 장관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발탁하면서다. 그는 조 전 장관 기용 전 청와대에 부정적인 뜻을 전한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측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 사퇴 직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은 조 전 장관 가족과 관련해 제기되는 혐의가 불러올 파장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조 전 장관이 취임하면 (조 전 장관 일가)수사가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나도 조 전 장관에게 장관직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밀어붙였고 윤 총장은 ‘법대로’ 대응하면서 여권과 윤 총장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 이후 여권과 윤 전 총장이 사사건건 부딪힌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여권과 윤 전 총장이 갈라선 또 다른 배경은 검찰 수사권 문제다. 윤 전 총장이 검찰 수사권 박탈 내용을 담은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추진에 반발해 지난 4일 사퇴하기 전에도 이 문제를 두고 여권과 여러차례 부딪혔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지난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윤 총장의 지론은 법치, 검찰 중립성이다. 정권에 관계없이 ‘사람에 충성 안 한다’고 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강하다. 변호사를 하다가 다시 검찰에 돌아온 것도 그런 자긍심 때문이다. 적폐 청산 최선봉에 선 것도, 조 전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 여권이 검찰 수사권에 힘을 빼는 것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좋게 볼 수 있겠나.”

조 전 장관은 윤 전 총장과 부딪친 끝에 두 달 만에 ‘검찰 개혁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하며 사퇴했다. 조 전 장관에 이어 추 전 장관이 윤 전 총장과 맞섰지만, 결과는 ‘연전연패’. 윤 전 총장에 대해 두 차례 수사지휘권 발동,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등 강공책을 폈지만 ‘6전6패’를 당했다. 조 전 장관과 추 전 장관 등 두 명의 법무부 장관이 윤 전 총장과의 대결에서 나가떨어진 꼴이 됐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법조계 출신의 국민의힘 의원은 “윤 전 총장은 총장으로 취임한 뒤 법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모양새에서도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며 “보통 맷집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웬만한 배짱과 뚝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고, 싸움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했다.

역대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벌인 사례는 많지만,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는 피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대결 구도가 되기 전 대부분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말 법무부의 연이은 직무 배제 결정에 불복해 두 번에 걸쳐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첫 번째가 법무부 장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문 대통령을 대상으로 했다.

검찰총장 직을 던진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싸움의 기술이 대선판에도 발휘할 수 있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생전 “대권은 절반은 (자신이) 만들고, 절반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주자의 강력한 권력의지와 함께 그를 주자로 만들어주는 정치적인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를 주자로 만들어주는 정치적인 환경 조성도 그 자신에 달렸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뜻이다.

즉, 대선 주자로서 갖춰야 할 첫째 요인이 권력 의지라는 것이다. 권력 의지를 뒷받침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치 리더십니다. 윤 전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들려면 권력 의지와 리더십을 우선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검찰총장으로서 보여준 뚝심과 정치 리더십의 성격이 100% 등치되지는 않는다. 정치 리더십은 훨씬 더 복잡하고 고단수의 영역이다. 검찰이라는 좁은 영역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고도의 정치 기술이다. 검사를 비롯한 부하만을 상대로 ‘나를 따르라’는 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직진 일변도가 아니라 때론 전술적 후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을 감동시켜야 하고, 다독이기도 해야 하며, 때론 함께 눈물도 흘려야 하고, 매정하고 단호할 필요도 있어야 한다. 마키아 벨리의 말대로 지도자는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함께 갖춰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다면적 예술이라고 했다.

정치 리더십에서 맷집과 배짱이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것만으론 안되는 것이 대선주자다. 윤 전 총장이 대선주자로 발돋음한 배경엔 문재인 정권과 맞서면서 ‘반문 정서’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른바 ‘언더독 이펙트(약자라고 생각될 때 동정하는 현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판에 뛰어들면 경제와 외교·안보 등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대선주자로서 자질을 갖췄는지에 대한 혹독한 검증 과정을 넘어야 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차기 대선 주자의 자격 조건으로 경제와 교육 지식, 외교 마인드, 조정 능력 등을 꼽았다. 윤 전 총장이 이런 조건에 대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검찰총장이라는 갑옷과 반문정서라는 보호막을 벗고 그야말로 광야에 서는 것이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 직을 그만두는 순간 ‘언더독 이펙트’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주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혹독하게 검증받는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며 “이제 검찰이라는 거대한 뒷배 없이 맨몸으로 그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 수사와 수사권 문제를 둘러싼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 수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비전을 갖고 여권과 맞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윤 전 총장을 위해 몸을 던질 조직과 충성심을 만들어 낼 힘, 리더십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러지 못하면 또 다른 반기문, 고건 사례를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최순실 특검에서 4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이끈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한 것은 보수층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사퇴 전날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터전인 대구를 방문한 것은 이런 ‘전력’을 감안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또 지금까지와 또 다른 차원의 여권의 공세도 돌파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선거 전략가로 꼽히는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과의 대결 모양새는 조 전 장관, 추 전 장관과의 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대통령 임기 말이지만, 정권이 윤 전 총장의 족쇄를 채울 수단은 많다. 검찰총장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킹 메이커로 나선 김무성 전 의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윤석열이라는 영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대선에 마음이 있다면 변해야 한다. 법과 정치는 다르다.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를 해결하는 게 정치다. 정치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