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르고 치솟던 주식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경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주식시장은 오히려 갈 곳을 잃은 모습이다.
경기 회복에 따른 물가·금리 상승 우려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매력을 끌어내린 것이다. 한동안 대세 상승장을 맘껏 즐기던 ‘동학개미’들은 갑작스레 펼쳐진 지루한 횡보장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연초 74조원까지 불어났던 투자자 예탁금이 지난 3일 63조원으로 줄었다. 은행예금은 다시 늘어나며 ‘역(逆) 머니무브’가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시장에서 종목으로’ 주식투자의 방향성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저 남을 따라서 우르르 몰려가듯 주식을 사는 걸 멈추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냉철히 점검해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성공 신화를 일궈낸 고수들은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는 것”이야말로 주식투자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10명의 고수가 한국경제신문이 오는 10일 발간하는 무크지 《똑똑한 주식투자》(사진)에 풀어놓은 종목 발굴 방법과 노하우를 정리해 봤다.
성장산업에서 혁신기업을 찾아라고수들은 주식투자에 성공하려면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꿔놓은 테슬라 같은 혁신기업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설파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세상의 모든 기업은 ‘혁신하는 기업’과 ‘혁신하지 않는 기업’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혁신하는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이 높게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도 했다. 혁신기업의 주가를 기존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혁신기업을 ‘기존의 시장질서를 뒤흔드는 창조적 파괴자’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이런 혁신기업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헤지펀드 업계 최고 펀드매니저로 평가받는 이한영 디에스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장과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는 ‘나무(종목)’보다 ‘숲(산업)’을 먼저 볼 것을 권했다. 종목 발굴 이전에 성장하는 산업부터 찾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 대표는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소속된 산업이 시장에서 소외돼 있으면 저평가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성장산업을 포착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공모펀드 매니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황우택 한국투자신탁운용 차장은 “일상의 변화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게임과 음식배달 등 소위 ‘언택트’ 산업이 급성장한 게 대표적인 예다. 리딩기업에는 스토리가 있다성장하는 산업을 찾았다면 그다음엔 혁신을 주도하는 ‘리딩기업’을 찾을 차례다. 김태홍 대표는 “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한 지배력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는 “영업이익률이 높으면서 매출이 같이 늘어나는 기업을 고르라”고 권했다. 시장 내에서의 독점적인 경쟁력을 핵심 지표로 본 것이다.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성한 신한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꾸준히 변신해 성장 스토리가 확장되는 기업은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고 했다. 새로운 산업이 떠오를 때 뉴스를 적극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런 기업을 찾을 수 있다고 정 센터장은 조언했다.
서범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그로스본부장은 리딩기업을 만드는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에 주목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처럼 기민한 인수합병(M&A)과 혁신적인 제품 출시로 기업을 매년 성장시키는 CEO를 모범적 사례로 꼽았다. 변화가 찾아올 때가 싸게 살 기회다종목 발굴의 의의는 결국 기업의 주가가 본질 가치보다 저렴한 종목을 찾는 데 있다. 고수들은 이런 좋은 기업은 산업의 구조적 성장이나 주력사업의 변화 등 변곡점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고 봤다. 서 본부장은 “화학업체에서 2차전지 회사로 탈바꿈한 LG화학처럼 미래 성장동력을 포착한 기업이 좋다”고 했다. 정 센터장도 “기업의 변신과 산업의 구조적 성장이 맞물리는 시기에 시장을 잠식할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NK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안정환 부사장은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부사장은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이 1배보다 낮고 PER이 10배 이하면 절대적으로 싼 편이지만 여기서 그쳐선 안 되고 수익성 지표인 ROE까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철 대표 역시 “주가 상승을 이끄는 건 밸류에이션이 아니라 성장 모멘텀”이라며 “적자에서 흑자로 턴어라운드하는 기업이나 거래정지가 해제되는 기업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