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분비하는 '베타 세포'로 변신한 '트렌스 세포', 새로운 당뇨병 치료 가능성 열어

입력 2021-03-05 14:41
수정 2021-03-05 14:43
기존의 당뇨병 치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했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연구진은 다른 세포를 인슐린 분비 세포인 ‘베타 세포’로 바꿔줘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3월 2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슐린과 정반대 역할을 하는 글루카곤의 작용을 억제하자, 베타 세포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몸의 혈당은 글루카곤과 인슐린으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혈당이 너무 높으면 인슐린이 분비돼 당을 글리코겐으로 바꿔 혈당을 낮춰준다. 글리코겐은 당이 여러 개 연결된 다당체다. 반대로 혈당이 너무 낮으면 글루카곤이 분비돼 글리코겐을 당으로 분해해 혈당을 높여준다. 글루카곤과 인슐린은 각각 이자의 ‘알파 세포’와 ‘베타 세포’에서 분비된다.

당뇨병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슐린의 분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혈당이 높아지는 질병이다. 제1형 당뇨병과 제2형 당뇨병으로 나뉜다. 제1형 당뇨병은 면역세포가 베타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전체 당뇨병의 10%를 차지한다. 제2형 당뇨병은 식이 습관, 운동 부족 등의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슐린에 대한 반응성이 적어진 경우다.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돼도 인슐린을 인식하는 수용체의 반응이 떨어진 상태다.

때문에 지금까지 당뇨병에 대한 연구는 인슐린과 베타 세포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반대로 글루카곤과 알파 세포에 집중한 것. 연구진은 간세포 표면에 있는 글루카곤 수용체에 달라붙어 글루카곤의 작용을 억제하는 항체를 고혈당 쥐 모델에 투여했다. 2주간 항체 치료를 유지하자 쥐의 혈당이 낮게 유지됐으며, 마지막 치료를 마친 뒤 40일간 혈당이 유지됐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진이 알파 세포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항체 투여 이후 이자에서 일부 알파 세포가 베타 세포로 전환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바뀐 '트렌스 베타 세포'는 정상적으로 인슐린을 분비했다.

연구진은 사람에서도 가능한 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면역 결핍 쥐 모델에 사람의 알파, 베타 세포를 이식했다. 사람 시스템을 갖춘 쥐에게 글루카곤 수용체 항체를 투여하자, 마찬가지로 베타 세포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글루카곤 수용체 항체를 매주 1회 주사하면 베타 세포의 양이 늘어나, 당뇨병이 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윌리엄 홀랜드 박사는 “이런 접근은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특히 유용하다”며 “수십 년간 베타 세포만 자가 면역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에 알파 세포의 양이 매우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전 세계 당뇨병 환자는 4억6300만명에 이른다. 성인 11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인 셈이다. ‘국제당뇨병연맹’은 갈수록 당뇨병 환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2045년에는 7억 명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국내의 당뇨병 환자는 494만 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9%에 이른다. 더구나 최근 5년 새 20대 당뇨병 환자가 50% 이상 급증하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당뇨병 치료제는 일시적으로 혈당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메이윤 왕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안정적인 혈당에 오랜 시간 지속되고, 베타 세포의 양을 늘려준다는 점에서 좀 더 근본적인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