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가 인공지능(AI) 금융 스피커를 개발하기 위해 추진해온 네이버와의 협업을 최근 중단했다. 이에 따라 대형은행 중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일명 ‘빅테크(대형 IT업체) 3인방’과 동맹을 맺지 않고 독자 노선을 택한 유일한 은행이 됐다.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자체 플랫폼을 키우는 정면 승부 전략을 택한 것이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금융은 2년 가까이 이어온 네이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업무협약 관련 활동을 지난 1월 중단했다. 2019년 4월 KB금융은 네이버와 AI 관련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 형성 및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추진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허인 국민은행장과 신중호 라인 공동 대표 등이 협약식에 참석했다. KB금융 측은 “협약을 계기로 네이버 AI ‘클로바’를 기반으로 한 KB 전용 금융 스피커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기술 협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AI 관련 협업을 모두 종료했다. KB금융 관계자는 “협약이 중단됨에 따라 네이버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나 활동은 없다”고 설명했다. KB금융은 카카오, 토스와도 협업하지 않고 있다. 또 빅테크 플랫폼을 통해 KB금융 계열사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KB금융의 이 같은 행보는 다른 은행과 차별화된다. 타 은행들은 잇따라 ‘빅테크 잡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4일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잡고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소상공인 전용 대출 상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네이버페이와 제휴해 간편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네이버클라우드와 손잡고 자사 은행 앱인 올원뱅크에 퍼블릭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카카오 플랫폼에도 국민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은행이 탑승했다. 카카오페이 내에서 은행 계좌를 곧바로 등록해 사용하도록 하거나 카카오페이와 제휴한 전용 통장(우리 하나 농협)을 제공하는 식이다.
KB금융이 빅테크와 거리를 두는 것은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 플랫폼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윤종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윤 회장은 올해 경영 전략 방향을 ‘넘버원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 잡고 ‘빅테크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계열사 주요 앱을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구축해 전면 승부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사용자를 기준으로 국민은행 앱의 월 이용자수(MAU)는 701만9852명을 기록했다. 카카오뱅크(784만1166명)와 토스(712만9883명)에 소폭 못 미치지만 “해볼 만하다”는 게 주요 경영진의 판단이다. KB금융은 인증 분야에서도 사설 인증(KB모바일인증서)을 자체 개발해 네이버·카카오 등과 승부를 벌이고 있다.
KB금융 고위 임원은 “빅테크의 성장세가 무섭지만 그 플랫폼에 들어가면 장기적으론 종속될 것”이라며 “KB금융 플랫폼에서 자산관리·부동산·자동차·헬스케어 등을 대폭 강화해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차별화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 디지털전략 담당 부행장은 “모든 은행이 빅테크의 금융 진출을 우려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협업을 강화하는 상황인데 KB의 독자 노선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KB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