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방재난본부 소방관들 "나눔 위해 몸짱 되니 구조 대응 빨라졌죠"

입력 2021-03-04 17:33
수정 2021-03-04 23:54
2년차 새내기 소방관 최정호 성북소방서 길음119안전센터 소방사(28)는 지난해 화재 현장에서 만난 어린 꼬마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온몸은 물론 얼굴까지 화상을 입어 흉이 졌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에 가슴이 미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꼬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몸짱소방관 희망 나눔 달력’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체력 소모가 큰 구조 활동을 하면서도 매일 닭가슴살로 끼니를 때웠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좋은 점도 있었다. 몸을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운동에 더욱 집중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져 구조 현장에서 움직임이 예전보다 빨라졌다.

최 소방사는 “몸짱소방관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달력을 구매해 중증화상환자의 치료비를 지원해준 시민들”이라며 “앞으로도 저소득층 화상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의 ‘몸짱소방관 희망 나눔 달력’ 프로젝트가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몸짱소방관 희망 나눔 달력은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소방관들을 모델로 달력을 제작해 판매 수익금 전액을 중증화상환자 치료비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달력 7만2801부를 판매해 수익금과 기부금으로 6억7000여만원을 모았다. 이를 통해 치료를 지원받은 중증화상환자는 160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올해도 시민들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 1월 19일까지 판매된 달력은 1만3737부, 수익금 1억300만원이 모였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3일 수익금과 기부금 전액을 한림화상재단에 기부했다.

최근에는 이 프로젝트로 치료비를 지원받은 수혜자가 화상 극복 관련 봉사활동에 나서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 몸짱소방관 희망 나눔 달력 사업을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아 치료 중인 정인숙 씨는 한림화상재단에서 개설한 화상경험 전문가 과정에 등록해 ‘화상 코디네이터’에 도전하고 있다.

임미나 씨(55)는 2018년 달력 판매 기부금으로 화상치료를 받으며 틈틈이 배운 캘리그래피를 통해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올해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한 한 소방관이 갑상샘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게 되자 임씨는 캘리그래피 작품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맨오른쪽)은 “앞으로도 사회에 나눔 문화를 확산하고, 화상환자 지원에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