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작심 비판한지 시작한지 사흘 만이다.
윤석열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직접 작성한 입장문 통해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총장은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사의가 받아들여지면 윤석열 총장은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된 지 1년8개월 만에 검찰을 떠나게 된다.
윤석열 총장은 전날(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검사 및 수사관들과 간담회를 마치고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와 이날 오전 반차를 냈다.
일부 언론들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은 전날 대구 방문 뒤 측근들에게 자신이 그만둬야 (중수청 추진을) 멈추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총장의 한 측근도 그의 사의표명 여부엔 말을 아끼면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중수청 입법 추진을 반대하는 언론 인터뷰를 하며 "직을 위해 타협한 적은 없다"며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나를 내쫓고 싶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밉다고 해서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인질 삼아서는 안 된다"며 "자리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한가"라며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윤석열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자연스레 정계 진출 가능성이 점쳐진다. 윤석열 총장은 전날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정계에 진출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정치권도 윤석열 총장의 사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민주당에선 최근 윤석열 총장이 검찰 수사권 폐지에 공개 반기를 든 것을 두고 공식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내심 불편한 기류다. 공직자 신분인데도 이미 정치인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총장의 대권 도전 시 파장에 대해서도 '찻잔 속 태풍'처럼 나오는 순간 빠르게 소멸할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이 정치적 리더십을 증명한 적은 없지 않은가"라며 "반대를 위한 결집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윤석열 총장이 재보선 전 사퇴할 경우 여권과 윤석열 총장의 대립 구도가 재조명되고 정권 견제 심리가 결집할 가능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총장의 사퇴 소식에 고무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관계자는 "당장 윤석열 총장의 입당은 어렵겠지만 그가 야권에 힘을 보태는 제3지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을 차기 유력 주자로 띄우는 시나리오도 벌써 거론된다. 4·7 재보선 이후 가능성이 거론되는 야권발 정계개편과 맞물려 윤 총장을 정권 심판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생각이다.
장제원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던 윤 총장이 시대정신을 소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진석 의원은 "윤석열 총장의 결기에 민주당이 바짝 쫄아서 재보선 전에 중수청법을 발의하지 못할 것 같다"며 "시장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총장 입장 전문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합니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
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