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여아 선호 시대?

입력 2021-03-01 18:21
수정 2021-03-02 00:06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아직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이 어두운 그늘로 존재하고 있음을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미투(me too) 운동과 ‘여혐’ 시비 등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개선돼왔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남아(男兒)선호’ 현상도 어느새 크게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출생성비는 104.9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여아 100명당 남아 104.9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남녀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출생성비 정상범위(103~107명)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다. 통계청 조사가 시작된 1990년 116.5명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한동안 초등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이 여자 짝을 못 찾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른바 ‘대를 잇기 위해’ 남아를 선호하면서 셋째 아이 이상의 성비가 한때 200명을 넘었으나, 작년엔 106.7명으로 낮아졌다. 남아선호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는 신호다. 작년 국내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세계 최저이고,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 수>출생아 수)가 처음 나타났다는 우울한 소식 속에 그나마 위안거리다.

남아선호가 사라진 것은 태아감별을 통한 낙태가 이제는 ‘비정상’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다. 2018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44%)이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24%)의 두 배에 달했다. 아들은 키우기 힘든 데 반해 딸은 부모 말 잘 듣고 나중에 잘 모신다는 인식에 ‘딸바보’ 부모가 흔해졌다. 국내 입양아 중 여아 비율도 68%(2017년)로 월등히 높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도 줄어든 핵가족시대엔 가정의 화목이 더 중요시된다. 가부장제 전통이 강하다는 대구의 출생성비는 2019년 109.2명이었지만 경북은 103.8명으로 전국 평균(105.5명)을 밑돈 것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아들은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노동력’과 조상 제사를 모시는 데 필수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소용이 많이 줄었다. 디지털 시대엔 남녀 성(性)역할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남성의 ‘근육 힘’보다 공감능력과 멀티태스킹 능력 등이 뛰어난 여성의 가치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여성 인구가 남성을 추월하는 ‘여초(女超)사회’도 2029년(통계청 예측)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