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의 별명 중 하나는 ‘리틀 서정진(셀트리온 명예회장)’이다. 일을 풀어나가는 스타일이 서 명예회장을 쏙 빼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서 명예회장과 인연을 맺은 건 대우자동차 기획실에 함께 몸담았던 1990년대 중반. “20년 넘게 회장님한테 혼나면서 배웠다”더니 결국 서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셀트리온을 홀로 이끌게 됐다. 서 명예회장은 다음달 주주총회를 끝으로 셀트리온에서 가졌던 모든 직함을 내려놓는다. 1일 만난 기 부회장은 “서 명예회장과 함께 2030년까지 나아갈 방향을 다 그린 만큼 그가 떠나도 셀트리온은 흔들림 없이 전진한다”고 자신했다.
▷‘렉키로나’(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효능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다(그는 고혈압약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렉키로나를 맞으면 경증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될 확률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 코로나19 증상이 사라지는 회복 기간도 3.4일(8.8일→5.4일) 줄여준다. 렉키로나의 효능은 실전(치료현장)에서 매일 검증되고 있다. 현장치료 의사를 만났더니 ‘렉키로나를 맞은 환자와 안 맞은 환자는 한눈에 구분된다’고 하더라.”
▷해외 허가가 나면 효능 논란이 수그러들까.
“유럽의약품청(EMA)이 최근 ‘롤링 리뷰(순차 심사)’에 들어갔다. 팬데믹 상황인 만큼 유망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평가를 빨리 끝내도록 해주는 제도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2~3개월 뒤 승인이 날 것 같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도 협의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처방되는 코로나 항체치료제는 릴리와 리제네론 치료제 두 개뿐이다. 유럽에는 없다. 해외에서 처방되면 렉키로나를 삐딱하게 바라보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코로나 치료제 수요는 충분한가.
“완벽한 공급 부족 시장이다. 리제네론은 로슈 시설을 이용하고, 릴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암젠 시설을 쓴다. 현재 100% 가동 중이어서 다른 약 생산을 중단하지 않는 한 코로나 치료제를 더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신규 생산 시설을 만들려면 5년 걸린다. 리제네론과 로슈 치료제는 모두 선구매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렉키로나가 나오는 것이다. 수요는 충분하다.”
▷만드는 족족 팔 수 있다는 얘기인데, 얼마나 생산할 수 있나.
“1공장(생산 규모 10만L)과 2공장(9만L)을 전량 렉키로나 생산체제로 전환하면 250만~300만 명분까지 만들 수 있다. 수요를 봐가며 생산량을 정할 계획이다. 램시마 등 바이오시밀러 재고가 6~9개월치 있는 데다 스위스 론자 등에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는 만큼 현 공장을 렉키로나 생산체제로 상당 부분 전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수출 얘기도 오가나.
“몇몇 곳에서 연락이 와서 얘기 중이다. 유럽의 한 곳과는 관련 자료도 주고받고 있다. 승인이 떨어지면 곧바로 수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미리 협의하는 것이다.”
▷렉키로나 판매 단가는.
“국내에선 원가로 내놓지만 해외, 특히 선진국에서는 제값을 받을 계획이다. 릴리와 리제네론 치료제의 평균가격이 대략 150만~250만원 정도다. 이 범위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코로나 치료제 마진이 바이오시밀러보다 훨씬 높은 만큼 수익성이 좋아질 거다.” (렉키로나를 1인당 200만원에 100만 명분을 팔면 2조원이다. 작년 전체 매출(연결기준 1조849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서 명예회장이 코로나 백신 개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코로나 백신을 연구하는 건 맞다. 두 갈래다. 먼저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mRNA(메신저 RNA) 백신을 해외 업체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단백질 재조합 방식 백신은 국내 모기업과 함께 연구 중이다. 일단 비임상까지 준비해놓은 상태다.”
▷코로나 백신이 신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서 명예회장이 말한 의미는 ‘아무도 백신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기술주권 차원에서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세계 백신시장을 몇몇 글로벌 업체가 과점한다는 데 있다. 들여야 하는 노력과 돈에 비해 가져갈 수 있는 시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 외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분야가 있나.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항암제가 치료효과를 내려면 엉뚱한 데서 방출되지 않고 암세포 곁에서 터져야 한다. ADC가 이런 역할을 한다. 여기에 유방암 치료제를 붙이면 ‘고성능 유방암 치료제’가 된다. 뭐든 갖다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기술이다. 해외 바이오테크 업체와 제휴해 ADC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실험 단계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하나.
“현재 아바스틴, 졸레어, 프롤리아, 아일리아, 스텔라라 등 5개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까지 매년 1개씩 내놓을 계획이다.”
▷경쟁이 심해지면 바이오시밀러 수익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1990~2000년대 반도체시장을 휩쓸었던 ‘치킨게임’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원가경쟁력이 낮은 업체부터 두 손 들게 된다. 결국 무한경쟁 끝에 살아남은 3~5개 업체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장치산업인 만큼 ‘뉴페이스’가 진입하기도 어렵다. 중국이 무섭긴 한데, 약품 신뢰성 문제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생산시설 확충 계획은.
“현재 생산 가능 규모는 1공장 10만L, 2공장 9만L다. 2~3년 뒤 3공장이 가동되면 6만L가 더해진다. 20만L짜리 4공장 설립안은 내년에 결정할 계획이다. 송도에 신규 부지를 받을지, 기존 부지의 남은 공간에 지을지를 놓고 검토 중이다. 2030년까지 60만L 생산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인수합병(M&A)도 검토하나.
“몇몇 국내외 업체를 보고 있다. 미래에셋, 산업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들과 함께 모두 합쳐 5000억원 규모의 M&A 펀드를 굴리고 있다. 항암제와 줄기세포 분야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 명예회장이 시작하는 혈액 진단 스타트업과 협업할 계획인가.
“전혀 없다. 오너가 세운 개인회사와 거래를 했다가는 오해를 살 게 뻔하다. 서 명예회장 스타트업에 셀트리온 돈은 한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거래도 없을 것이다.”
▷서 명예회장의 장남(서진석 수석부사장)이 올해 주총에서 셀트리온 이사회 의장이 되는데.
“서 명예회장이 분명하게 나눠줬다. ‘농사를 짓는 일은 최고경영자(CEO)의 몫, 씨를 뿌리는 건 이사회 의장의 몫’이라고. 일상적인 업무는 내가 주도하고, 미래사업에선 아무래도 의장의 역할이 클 것이다. 어차피 2030년까지 큰 그림은 서 회장과 다 짜놨다. 이걸 기본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업데이트하면 된다.”
▷오는 5월부터 공매도가 재개되는데.
“공매도가 재개되건 말건, 펀더멘털을 강화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만 집중할 계획이다. 그게 주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 아닌가.”
■ 기우성 부회장은
△1961년 서울 출생
△1988년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1988년 대우자동차
△2000년 넥솔
△2015년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2018년 셀트리온 대표이사 부회장
오상헌/김우섭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