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주요 대기업은 물류와 시스템통합(SI) 관련 거래 내역을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물류와 SI를 ‘일감 몰아주기’가 빈번히 이뤄지는 업종으로 분류, 사실상 내부거래 통제에 나서면서다. 정부가 투자자의 알권리를 명분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1월 말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공시 매뉴얼 개편 방안과 관련한 설명회를 열었다. 내년 5월부터 SI와 물류 업종 거래로 발생한 매출 및 매입액, 내부거래 비중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공시 자료를 토대로 일감 몰아주기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기업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내부거래 비중만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 업종을 공정위가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물류와 SI는 기업 공급망의 핵심”이라며 “현행법도 ‘보안성이 요구되는 SI 거래’ 등은 일감 몰아주기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무자들은 정확한 데이터를 뽑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우선 업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을지가 불분명하다. SI 분야에선 통신서비스, 데이터센터 유지보수 거래 등이 업종 분류가 어려운 ‘회색지대’로 꼽힌다. 물류도 마찬가지다. 전사 차원의 물류 서비스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거래는 추적이 가능하지만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택배거래, 퀵서비스 등은 업종 분류는 물론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
공정위가 사실상 ‘서류 폭탄’을 던졌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 공시 실무자는 “공정위 매뉴얼을 지키려면 퀵서비스 영수증까지 챙겨야 할 판”이라며 “연간 수천~수만 건에 달하는 거래를 수작업으로 분류해야 할 처지”라고 지적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