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오등은 자에~' 대 '우리는 오늘~'

입력 2021-03-01 09:00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독립선언서가 울려퍼졌다. 일제 강점하에서 분연히 떨쳐일어나 민족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날이다. 우리말글 관점에서는 아쉬움도 많은 글이다. 선언서의 첫머리만 봐도 숨이 막힌다. 어미와 토씨를 빼곤 죄다 한자로 돼 있다. 100여 년 전 우리말글 실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미와 토씨 빼곤 한자로 된 3·1독립선언서한자 의식이 점차 약해져 가는 요즘은 아예 이를 읽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한글로 옮기고 띄어쓰기를 해보면 좀 나을까?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여전히 어렵다. 독립선언서를 따로 배우지 않은 세대라면 아마 첫 구절부터 막힐 것이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이라니? 한자어를 단순히 한글로 옮겨쓴 문장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태 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 작업을 벌였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이제 의미가 또렷해지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지 1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국민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문장으로 바뀌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원조는 마땅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및 반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훈민정음 서문에 그 뜻이 잘 드러나 있다.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말을 옮길 수가 없었다. 세종은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는데, ‘사람마다 수비 니겨 날로 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라고 했다. 즉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편히 쓸 수 있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독립신문의 정신 살려야이런 세종의 정신을 ‘우리말 쓰기’란 관점에서 구현해 낸 게 독립신문이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떼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함이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사설 한 대목이다. 1896년 4월 7일 첫 호를 냈다. 125년 전에 씌어진 글 치고는 읽고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띄어쓰기를 비롯해 맞춤법만 좀 다를 뿐이다.

독립신문은 언론사적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국어사적으로도 두 가지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 신문 최초로 한글로만 썼으며, 무엇보다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 또한 분명히 밝혔다. 한글로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띄어 쓰는 까닭은 ‘누구나 보기 쉽고 말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원리를 생각할 때 지금 봐도 선구자적 혜안이다.

‘누구나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독립신문의 창간 정신은 오늘 우리의 글쓰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쓸 때 표현이 가장 자연스럽다. 우리말답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거운 한자어나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의 말글살이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다. 다음 호에서 그 실태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