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 추구가 시장을 통해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질서와 조화가 이뤄지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게 그의 핵심 논지입니다.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가 탐욕이 아니라 공적 이익도 향상시키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해서 그의 저서 《국부론》은 자본주의 발전을 옹호하는 근거로 쓰여왔어요. 공유자원의 남용
그러나 개인의 합리성이 공적으로도 합리적인 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스미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를 ‘저격’한 이는 경제학자도 아닌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 하딘은 1968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논문을 통해 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유자원을 남획해 궁극적으로 사회공유재가 고갈되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에서 많이 거론되는 사례는 목초지입니다. 마을의 공동 목초지에서 사람들은 각자 더 많은 이득을 보기 위해 자신의 가축을 더 많이 방목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과도한 방목을 초래해 목초지는 황폐화되고 결과적으로 가축은 소멸되는 비극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죠. 하딘은 “지하자원, 초원, 호수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유지를 오직 시장 기능에만 맡겨두면 자원이 낭비돼 금방 고갈될 위험이 있다”며 ‘공유지의 비극’을 경고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지금도 흔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멍이 작은 그물(저인망)로 어린 고기까지 싹쓸이해 어장을 황폐화시키거나 마을 뒷산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버려 벌거숭이산으로 만드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케냐와 짐바브웨의 엇갈린 코끼리 보호 정책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정부의 규제, 사유권의 확립, 공동체 구성원의 자율적 협조 등이 있습니다. 해결책 가운데 어떤 방안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코끼리 보호 관련 사례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무분별한 코끼리 남획으로 골머리를 앓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엇갈린 정책이 뚜렷이 대조되기 때문입니다. 케냐와 탄자니아 같은 나라는 코끼리 사냥을 불법화하고 상아와 가죽 거래를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밀렵이 성행하면서 케냐에서만 10년 새 코끼리가 6만5000마리에서 약 1만9000마리로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 짐바브웨 보츠와나 말라위 등은 코끼리를 주민에게 분양하고 사유재산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들판에서 마구 포획을 일삼던 주민들은 ‘내 코끼리’가 되자 소중히 돌봤고 멸종위기까지 갔던 코끼리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코끼리 수가 늘어나자 연간 5000마리 정도를 사냥 쿼터(할당량)로 인정해줘 가죽과 상아의 매매도 가능해졌습니다.
영국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도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인클로저는 토지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담장을 쌓는 것으로 15~16세기에는 양을 기르기 위해, 그리고 18~19세기에는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이뤄졌습니다. 토지에 대한 공유가 부정되고 배타적 사적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영국의 농업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인클로저는 뒤이은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역할을 했고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토머스 맬서스가 경고했던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반공유지의 비극도 있어21세기에도 공유지 논란은 여전합니다. 마이클 헬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98년 사이언스에 ‘반(反)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Anticommon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과 반대 경우로, 공유돼야 할 자산이 쪼개져 사유화하면서 사회 전체의 생산 증가를 막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지식재산권과 특허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데, 이들이 과도하게 보호되면서 지식과 정보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아무도 대가 없이 그걸 생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허 등이 과도하게 보호되면 인류를 풍요롭게 해야 할 지식과 정보가 널리 쓰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우려하는 것이라면 반공유지의 비극은 자원의 과소 이용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당시 울타리에서 밀려난 많은 이가 도시로 옮겨간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고 지적했죠. 물론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 공장에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당시 농민들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개인의 이익과 공익이 충돌한다면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까.
② 공유지의 비극과 반(反)공유지의 비극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해결 방안을 제공할까.
③ 시장이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자주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체제인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