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택과 집중 필요한 코로나 재정지원

입력 2021-02-24 17:34
수정 2021-02-25 00:15
지난 1월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더 이상 내리지 않는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낮은 금리가 자산 불평등(집값 상승)의 원인임이 다수 의견으로 나왔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낮은 금리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 왔다. 따라서 이런 변화는 코로나19 대응 정부정책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작년 초부터 이번 설까지 민심은 집값 상승에 쏠렸다. 이런 현상이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고 통화정책과 무관하다면, 낮은 금리를 유지하는 한국은행의 부담은 그만큼 덜어진다. 그러나 집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낮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면,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서라도 집값 상승의 부작용(부익부 빈익빈)을 완화해야 하는 책임성이 그만큼 커진다. 물론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줘 소비를 진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10월 보고서에서 보편 지원보다 선별 지원의 재정승수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보고한 바 있다.

양적완화 정책(저금리 정책)은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진행됐는데 막대하게 풀린 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리는 현상은 경제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이후 저금리로 인한 자산가격 상승(특히 집값 상승)과 이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분석돼 왔다. 저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집값 상승은 수도권 일부 지역의 현상이란 반론도 있지만, 풍부한 유동성으로 수도권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우량주에 유동성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낮은 금리는 계층뿐만 아니라 지역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위기는 소득·자산의 격차, 지역 간 격차에 더해 임금근로자(특히 공공부문)와 비정규직 근로자(특히 자영업) 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자산·소득, 지역, 업종 간 K자 형태의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현재 또는 미래의 한정된 세금으로 이 격차를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재정을,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쁜 계층(K의 하단)에 집중하는 것은 자명한 재정정책의 원칙이다. 재정학 이론에서 부익부 빈익빈을 완화하는 기준, 즉 분배적 정의에 대한 기준은 그 영역이 윤리학, 철학과 겹치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20세기 존 롤스의 정의론(사회적 약자 우선 배려)에 입각하지 않고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같은 보다 일반적인 분배적 가치를 받아들이더라도 한정된 예산을 취약계층에 우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은 여전히 유지된다는 것이 분배적 정의에 대한 논의의 결론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노인인구 증가로 국내총생산(GDP)의 10% 넘게 증가할 복지지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반면 세입(국민연금과 건강보험 포함) 증가세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즉 한국의 세입·세출 격차는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악어의 입’ 현상을 보였고 앞으로 그 정도가 심해질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한국의 현재와 같았던 1990년대 초반 국가채무가 60%대였다. 본격적인 고령화로 폭증하는 세출에 대응해 증세(부가가치세와 사회복지부담금)를 단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역부족이었고 지금은 GDP의 300%에 접근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재정학자들이 이에 대해 내놓은 처방은 ‘천문학적인 증세가 필요함’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코로나 5년 이후 누적 재정적자 규모는 놀랍게도 한국이 중상위권이다. 현재 대폭적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 많은 OECD 국가의 재정적자가 1~2년 후 빠르게 사라지는 반면 한국의 ‘악어 입’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약·피해계층 지원은 과감하고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부유하고 안정적인 계층에까지 큰 규모의 재정지원을 하기에는 한국의 재정 상황이 양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