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주인이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지금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 미·중 패권전쟁의 향배다. 당장 워싱턴이 복원해야 할 리더십은 경제적 리더십이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세상을 뒤흔든 작년 주요국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중국만 유일하게 2.3% 성장했다. 대외무역에서도 중국은 사상 최대인 53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차이나 후려치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2019년 2958억달러에서 작년에 3169억달러로 확대됐다. 이쯤이면 중국 경제는 불침함(不浸艦)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코로나 팬데믹 착시효과다. 올해엔 미·중 경제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선, 미국은 산업의 뿌리인 기업이 건재하다. 놀랍게도 작년 미국 기업의 파산 신청은 53만 건으로 1985년 후 최저다. 서비스업은 타격을 받았지만 제조업은 공장 문을 안 닫고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기대를 뒷받침하는 것이 작년 미국인의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들기는커녕 8% 정도 증가했고, 개인저축도 173% 늘어났다는 점이다. 주머니가 두둑한 미국인이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국면에 들어가면 폭발적 소비로 ‘V자’ 반등을 이끌 것이라는 신호다.
반면 작년 중국 경제의 선방은 방역 관련 제품 수출 특수와 정부 주도의 엄청난 인프라 투자 덕분이다. 베이징이 강조하는 내수주도형 성장의 핵심인 민간소비는 취약하다. “6억 인구가 월 17만원 이하로 생활한다”고 리커창 총리가 실토했듯이 갈수록 악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중국인의 소비여력을 구조적으로 위축시킨다. 무리한 정부 주도형 인프라 투자는 지방은행의 ‘묻지마 대출’을 늘리고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의 부채를 위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다음은 ‘미국 우선주의로 훼손된 동맹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군사정치적 리더십 회복이다. ‘미국은 되돌아왔다(America is back)!’라는 멋진 슬로건을 내건 민주당 정부는 나름대로 빠른 행보를 하고 있다. 독일의 러시아 가스관 사업에 대해 반대의 꼬리를 내리며, 방위비 분담을 놓고 팽팽히 긴장했던 유럽에 유화의 제스처를 보냈다. 난항을 거듭하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도 합리적 수준에서 타결될 것 같다.
또 미·중 패권전쟁도 일방적 중국 몰아치기에서 합리적인 ‘스마트 전략’으로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한다.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대처에선 중국과 협력하고, 지식재산권, 군사패권 같은 분야에선 경쟁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차이나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한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 그럴듯하다.
그런데 벌써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선 이 ‘스마트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베이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떠난 뒤 미국이 후퇴하고 양보하고 있다고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두 나라 국가지도자와 외교수장이 첫 대화를 했지만 결과는 ‘생각의 차이’를 확인한 것뿐이다. 워싱턴은 중국의 인권,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국가주도형 발전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베이징 반응은 ‘남의 나라 일에 참견하지 말라’ ‘서로 다른 국가발전 전략을 상호 존중해주자’다. 이같이 두 나라 사이에 생각의 골이 깊은데 부드러운 스마트 전략만으로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리더십을 회복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한 백악관은 안이한(!) 스마트 전략을 버리고 강력한 경제 회복을 기반으로 보다 대범하고 광범위한 동맹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벌써 트럼프 전 대통령이 휴지통에 던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이 조심스레 논의되고, 국가 안보와 산업 기반 동맹, 무역·투자, 연구개발(R&D) 동맹 같은 새로운 군사·경제 동맹의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다. 기업은 미국 경제 회복의 호재를 준비하고, 중국 경제의 착시효과에 현혹되지 말고 탈(脫)중국화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베이징이 시진핑 방한 카드만 보이면 반색하는 정부는 보다 냉정히 ‘무엇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인가’를 묻고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